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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23. 2024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5)

episode. 5

5               


 그날 이후로 게시판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폐쇄한다는 공지문이 붙었다. 폐쇄이유는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처음에 담임이 자살 방지라고 주장했던 것이 학교 내에 퍼져버렸다. 한순간에 나는 왕따를 당해 자살을 결심한 녀석으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책상과 의자로 막아버렸기 때문에 옥상은커녕 자물쇠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나는 양손에 깁스를 했다. 무거운 거라도 들었어요? 의사는 엑스레이를 보며 물었다. 네······, 뭐. 그는 인대가 조금 늘어졌다며, 이 주 정도는 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건이 있고 며칠 뒤, 학교에는 설문지가 돌았다. <학교 폭력 실태조사>라는 큼직한 문구와 함께, 폭력을 당하거나,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설문지를 걷어갈 때까지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채수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면 할 말이 정말 많으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설문지를 받고도 그저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부모도, 선생도, 이걸 보낸 교육부 놈들도, 나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왕따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철저히 무시당하는 왕따.   

   

 설문지 사건은 조용히 지나갔다. 따돌림이나 폭력을 당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그 설문지의 결과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나에게 선행을 베푸는 녀석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자물쇠를 부수든, 설문지가 돌든, 여전히 나의 위치는 같았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을 걸 일도 없었다. 여전히 멍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공! 하는 소리가 들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채수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는······.      


 그럼,     


 그렇지.     


 어김없이 소각장으로 달려간다. 채수는 나무 상자에 앉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채수는 나를 보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그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내 어깨를 눌렀다. 사람 좋은 미소로 일관하더니 내 앞에 와서는 표정이 싸하게 변했다. 너지? 그의 말에 자연스레 몸이 움츠러들었다. 담임한테 찌른 거 너잖아. 내가 뭐라 대답할 시간도 없이 그는 섬뜩한 말투로 물어댔다. 나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도 않았다. 너 나 좆되보라고 찌른 거잖아. 그 말 뒤에 벌어진 일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날은 정말 맞아도 너무 맞은 날이었다. 맞는 것에 도가 트였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오만이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새도 없이 맞고 또 맞았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는데 내가 흘린 피인지, 채수의 손에서 난 피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채수는 처음에는 배를 걷어차다가 내가 토하자 더럽다며 얼굴을 발로 밟았다. 내 머리채를 잡고 얼굴에 주먹을 계속해서 꽂았고, 뚜둑 – 하는 뼈 소리와 이빨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채수는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죽여버린다는 말을 연신 해대었다. 폭력이 잠시 멈춘 순간에는 미뤄뒀던 통증이 몰아서 찾아왔고, 침을 뱉으면 피인지 침인지도 모를 걸쭉한 액체가 튀어나왔다.      

 채수에게 묻고 싶다. 반 아이들에게, 선생들에게, 어른들에게, 아니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라도 묻고 싶다. 왜 하필 내가 왕따를 당해야 하는 건지. 누군가 왕따가 되어야 한다면, 그건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거잖아. 60억 인구 중에서, 한국 내에서, 그리고 이 학교 내에서 꼭 한 명이 왕따가 되어야 하는 거라면, 그건 꼭 내가 아니었어도 되는 거였잖아. 아니, 사실 왕따라는 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난 왜 맞아야 해? 난 왜 고통받아야 해? 난 왜 미움받아야 해?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어느새 나는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야, 공. 다음에는 진짜 죽여버린다. 똑바로 좀 하라고.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왜 하필······.     


 채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킬킬대며 웃었다. 이유가 어딨어. 병신아. 그냥 니가 존나 운이 없는 거지. 탁 –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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