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외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ked Jul 31. 2022

F. 불교와 명상의 관계성

명상의 원류, 불교명상

불교는 종교일까? 철학일까? 아니면 명상일까?

불교라는 단어의 정의에는 사실 여러 개의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먼저 불교는 영어로 Buddhism이다. '깨달은 이'라는 미의 부처 혹은 붓다라는 의미인 Buddha 와 가르침, 주의(主義), 행동 등을 의미하는 –ism 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Buddhism이란 영어로 보면 붓다주의, 붓다의 사상,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번역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 불교를 접한 서구 사람들은 불교를 사상이나 가르침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적인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만 서양사람들이 느낄 때는 종교적인 측면보다는 사상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불교를 사상으로 보는 견해에 가깝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불교는 사상이나 주의로만 보기엔 무리가 있다. 불교는 수행을 동반한 실천철학이고 해탈이라고 하는 깨달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변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렇듯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실천철학인 불교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정치 문화의 발전과 함께 종교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 그렇게 불교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종교로서의 불교와 수행으로서의 불교가 존재한다.


 보통 불가(佛家)에서는 불교라는 큰 테두리 안에, 수행으로서의 불교를 부처님의 법(法), 즉 불법(佛法)이라고 하고 종교로서의 불교를 그냥 불교(佛敎)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불법(佛法)붓다의 가르침인 동시에 붓다가 깨달은 진리를 의미하며 또한 진리에 나아가기 위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종교인 불교종교적인 의례기복적인 기도로 상징된다. 보통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서 승복을 입은 스님들과 함께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며 부처님의 이름을 연호하며,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즐거움의 세계로 나아가길 염원한다.

이렇게 수행으로서의 불법과 종교로서의 불교는 사실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지점이 존재한다. 2,500년의 불교역사에서 불법으로서의 불교는 점점 종교로서의 불교화가 진행되어 수행과 종교라는 두 기능이 합쳐진 넓은 의미의 불교로 재탄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불교가 수행에서 종교가 된 이유를 간략히 살펴보면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붓다 사후에 붓다의 말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학문화되어가고 그렇게 수백 년이 흐른 뒤에는 수행으로서의 불교보다는 사변적이고 철학적이며 이론적인 불교로 변하게 된다. 이렇게 학문화되는 불교는 필연적으로 많이 배우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과는 괴리되고, 점점 더 지식을 공유하고 있는 소수 집단만의 불교가 되어버리며, 수행 또한 직관적이지 않은 이론적인 학문에 맞춰진 수행으로 변질되게 된다. 결국 이론만 무성한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이다.

이즈음에 불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게 되면서, 초기 붓다 시절로 돌아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하지만 붓다 사후 수백 년이 지나버렸고 붓다 생존 시기의 불교가 어떤 형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소수 지식인들의 불교에서 일반 대중을 위한 불교로 재탄생하려는 시도가 생겨나게 되고, 그 결과 붓다의 모습을 한 불상을 만들어 경배하고 붓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종교화되어 갔다. 이 종교화는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아우르는 불교를 지향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민중불교가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불법불교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맥락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연기설 업이다. 앞의 챕터에서 설명한 바로 그 연기설(緣起說)과 업(業)이다. 수행으로서의 불교인 불법도 종교로서의 불교도 모두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의 기본개념의 토대에서 출발한다.

수행으로서의 불교에서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곧 이 연기설과 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의 지혜라고 하는 것도 연기설과 업을 체득하여 나타나는 지혜를 의미한다. 결국 깨달음이란 연기설과 업을 깨달아 완전히 체득하여 지혜를 증득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佛法), 즉 불교명상의 핵심은 연기설에 근거한 반복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종교로서의 불교는 불법(佛法), 즉 불교명상의 복잡한 이론체계와 실천수행을 통한 지혜의 증득 - 깨달음 - 과는 달리, 기도와 참회를 통한 실천수행을 근간으로 한다. 단순한 삶과 선한 행위를 통해 이생의 삶에 대한 복을 바라기도 하지만 내생에 오는 복을 바라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통해 현재의 삶이 더 좋아지기를 기원하고 참회를 통해 업을 씻어내어 미래생에 대한 복락을 추구한다. 더불어 다음 생에는 제대로 된 마음수행을 하기를 기원한다. 즉 연기설과 업이 삶을 사는 생활원리로서 작용한다.


명상의 원류는 불교명상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 서구사회의 현대명상은 불교명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명상이 서구사회에서 널리 퍼져가는 이유중에 하나는 더이상 기독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라고 하는 것이 현대인의 지적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탈종교의 분위기에서 명상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불교도 또한 같은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렇게 종교적인 부분을 배제한 명상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서구현대명상이 탄생하게 된다.


그런데 현대명상은 종교적인 부분을 제거하려는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불교명상의 근본인 '연기설과 업'의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발전한다. 불교명상의 핵심인 연기설과 업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면서 명상을 하려다 보니 불교명상의 기법만을 차용하여 새롭게 해석한 것이 현대명상인 것이다. 그렇게 현대명상은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게 된다. 불교라고 하는 종교성을 배제하고 서구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기존 기독교적인 문화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명상을 추구하다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을 주도한 사람들은 미국 정신의학계와 심리학계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명상은 심리학적 기반의 명상이 되는 것이고, 명상이 단지 '마음의 안식'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한계점에 도달한 심리학에 명상은 새로운 화두와 먹거리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E. 행복강박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