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구성하는 의식체계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을 탐구하는 영역도 빠르게 발전해 왔다. 근래 들어 인간의 뇌와 의식을 연구하는 학문인 심리학과 뇌과학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부분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어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이 밝혀지는 중이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불교명상의 의식체계를 기본으로 하고,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을 빌려, 인간의 의식체계에 대하여 기존의 ‘유식학의 의식체계’와는 다르게 설명하려고 한다.
아래에 의식 구분과 설명은 임의로 분류한 것이다. 용어를 심리학에서 빌려서 사용했지만,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다를 수 있음을 먼저 밝힌다.
사람들이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볼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겉모습을 보게 된다. 머리카락, 피부, 치아, 손톱, 눈동자, 골격, 키 등등, 외면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인지한다. 겉껍데기를 보고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껍질 속에 들어있는 피나 뼈, 힘줄, 내장 기관 등을 인지하지 못한다. 분명 이런 것들이 내 자신임에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들이 내 자신의 일부분임을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
우리는 미루어 짐작함으로써 그것들이 우리 자신인 것을 알 뿐이다. 이처럼 우리 몸의 껍질이 아닌 부분도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그런 내부의 기관과 요소들은 내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생명 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정신에 있는 의식도 껍질과 같은 의식도 있고, 껍질이 아닌 본질에 가까운 의식도 존재한다. 보통의 경우, 우리가 우리의 외면을 보고 우리 자신을 인식하듯이, 의식도 겉으로 드러난 의식만을 우리 자신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깊은 심연의 의식이 존재한다. 표층의 의식이 나의 겉모습 같은 표면의식이라면 심연의 의식은 나의 생명 활동과도 같은 심층의식이다. 나의 겉모습이 생명 활동의 본질이 아니듯 표면의식만이 의식활동의 실체가 아니다.
표면의식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의식을 말한다. 지각하고 인식하고 기억하고 상상하고 추론하고 판단하고 의도하는 등의 모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과 내가 일으키는 생각들, 그리고 기뻐하고 화내고 우울해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하고 미워하고 부끄러워하는 나의 감정들의 총합을 말한다. 보통 우리는 이런 표면의식을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 (일어나는 + 일으키는) 생각 + 감정 = ‘나’
현재의식은 표면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인식의 세계를 의미한다. 현재의 내가 나를 인지하는 의식체계이다. 메타인지 혹은 상위인지라고 하는 것 또한, 평면적인 현재의식 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 또한 내가 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상위인지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평면적인 상대인지들의 조합을 서로서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나를 가지고 또 다른 현재의 나를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메타인지(상위인지)가 ‘높다’ 혹은 ‘낮다’라고 하는 것은 상대인지를 객관화하는 능력이 우월할 것일 뿐이다. 이런 상대인지들의 수준과 상태에 따라 그 사람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즉 메타인지 또한 ‘객관화인지’ 일 뿐 현재의식에서 벌어지는 의식이다.
일단 내가 깨어있는 상태의 모든 의식이 표면의식이며 현재의식이다.
이에 반해 심층의식은 ‘나’라는 의식의 원천이며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나를 만들어 낸 재료이자 자양분이고 토대가 되는 의식이다. 이 심층의식은 또 둘로 나뉘는데 잠재의식과 무의식이다.
(1) 잠재의식
우리는 잠재의식의 존재를 꿈으로 알 수 있다. 우리가 꾸는 꿈은 또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상황이 벌어지거나 내가 욕망하던 세계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래서 꿈속에서의 나는 조금 다른 행동을 하거나 다른 결정을 하기도 하고, 의식의 파편들이 조합되어 전혀 엉뚱한 시간과 공간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현재의식과는 사뭇 다른 삶의 방식을 꿈속에서 살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잠재의식은 현재 나의 과거가 담겨 있고 미래를 저장하는 영역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마음들[감각식(感覺識), 감정식(感情識), 생각식(意識) + 욕망식(欲望識)]이 여기에 들어있다. 즉, 감각으로 만들어진 의식, 감정으로 만들어진 의식, 생각으로 만들어진 의식, 그리고 욕망으로 만들어진 의식 등이 여기에 저장된 것이다. 이런 의식들은 나라고 하는 개인에 한정되어 일어나는 의식이다. 인간은 타인의 감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뿐, 똑같이 느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의식들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다. 그래서, 이렇게 저장된 모든 경험적 의식은 순간순간의 ‘나’를 만들고 그 순간들이 모여서 연속성이 있는 ‘나’를 만들어 간다.
유식(唯識)에서 보면 이 영역은 7번째 의식(칠식=자아식=말나식)과 8번째 의식(팔식=저장식=아뢰야식)의 일부를 합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2) 무의식
이 무의식의 영역은 현대사회가 발전하면서 과학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영역이다. 인간이 뇌를 연구하게 되면서 알게 된 과학적 지식을 참조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무의식은 꿈도 꾸지 않는 완전한 숙면에서 존재하는 의식 세계이다. 또한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고, 손톱과 발톱을 자라게 하며, 심장 등의 내장 기관을 움직이게 하는 의식의 세계이다.
무의식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무의식의 영역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잠재의식에는 그래도 ‘나’가 존재하지만, 무의식의 세계에는 ‘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란 ‘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나’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의지가 개입할 수 없다. 의지를 만들어 낼 ‘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이 무의식의 영역에는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까?
무의식은 인간 존재의 영역이다. 여기에는 생명을 유지하는 의식이 존재하고,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의식이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기억과 생명 그 자체의 기억이 여기에 존재한다.
다시 설명하자면 이 무의식의 영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a) 인간의식(人間意識)
첫 번째, 영장류 중에서도 인간이 인류(人類)로서 존재하는 의식영역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확연히 다른 뇌의 활동을 한다. 자연에 스스로 진화해 가면서 적응하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자연에 맞춰 살 방법을 고안해서 적응해 나간다. 인간만이 지구의 구석구석에 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자연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고안해 낸다. 이처럼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축적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물에게 언어를 가르칠 수 없고, 글을 가르칠 수도 없다. 언어와 글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성이다. 이렇듯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진화된 의식체계가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각 동물의 특성을 가르는 의식영역이라고 보면 된다. 동물들이 가지는 고유의 의식체계를 말한다. 동물들은 태어나서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그 동물로 잘 살아간다. 개가 개처럼 행동하고 고양이가 고양이처럼 행동하게 하는 의식의 영역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개로서의 의식, 고양이로서의 의식이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b) 생명의식(生命意識)
두 번째, 생명 활동의 의식영역이다. 이 영역은 생명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가 생명을 만들고 원생생물에서 식물, 동물 등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포유류로서의 인간으로 진화하기까지의 모든 생명 활동의 의식 영역인 것이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머리카락이 자라고, 손톱이 자라는 모든 생명의 유지 작용이 이 의식의 영역인 것이다. 이 영역의 의식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 즉 생물의 의식영역이라고 봐도 된다.
사실 지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물질들이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바뀌고 다시 생명을 품게 되어 지구는 수많은 생명으로 뒤덮이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들은 방향성은 가지지만 어떤 목적성을 가지지는 않는다. 지구 환경의 변화에 맞춰 적응하며 진화해 왔을 뿐이다.
인간은 이렇게 목적성을 가지지 않는 진화의 종착역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생명은 영원하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어떤 형태로든 이어가려고 한다. 그 와중에 사멸해 가는 종도 있고, 진화를 통해 발전해 가는 종도 존재한다. 이렇게 수많은 세월 속에서 최적의 생명 활동을 하게 하는 근본적인 생명 활동의 의식영역이 무의식의 영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