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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May 25. 2020

재능이 의심되는 날에는

"칭찬해주시겠습니까? 대사를 써 가지고 왔습니다"


3일 동안 붙들었던 원고를 폐기처분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문장을 이리저리 옮기고 생각을 짜깁기해 봐도 소용없었다. 더는 손쓸 방도가 없는 회생 불가의 글이라는 사실을 왜 좀더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완성된 원고를 여유롭게 송고한 뒤 낮잠을 자겠다던 내일 아침 계획은 또 얼마나 허무맹랑했는지.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건 수년 째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여전히 허우적대는 자신을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의욕이 꺾이고 자신감이 바닥을 쳤다.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그 일을 계속해가는 법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프리랜서처럼 자기혐오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면 더더욱. 다행인 건 폐기 처분도 경험이라면 경험이어서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내가 배운 교훈은 이러하다. 혹한기를 대비하는 곰과 다람쥐처럼 에너지원을 부지런히 비축해두어야 한다는 것. 회복하는 힘은 그 힘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맞춰 짠 하고 등장하는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에 하염없이 약한 나는 평소 칭찬을 주섬주섬 모아두었다가 우울에 빠질 때마다 하나씩 꺼내 삼킨다. 아직까진 이보다 더 괜찮은 고효율 에너지원을 찾지 못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렇다. 


일본 드라마 <수박>에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역시 칭찬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하야카와는 서른넷에 집을 나와 하숙 생활을 시작한다. 이 소식을 들은 직장상사는 이사 기념 선물을 주겠다며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라 하는데, 이때 하야카와가 가장 먼저 떠올린 선물은 다름 아닌 현찰이다. 그런데 며칠 사이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하야카와의 마음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그가 바라는 선물도 현찰에서 칭찬으로 바뀌었다. 


“칭찬해 주시겠습니까? 대사를 써 가지고 왔습니다.” 


하야카와가 상사에게 건넨 종이에는 16년간 근무한 직장으로부터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머쓱해하며 준비된 대사를 읽어 내려가던 상사의 표정에도 어느 순간엔가 진심 어린 고마움이 스친다. 하야카와처럼 대사를 부탁할 상사나 동료가 없는 나는 어느덧 셀프 칭찬의 달인이 됐다.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은 대개 사소한 행위들이다. 칭찬의 목표가 자존감 높이기는 아니기에. ‘기분 좋음’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가벼운 활력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칭찬이 반드시 일과 관련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행위가 구체적일수록 좋다.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묻고, 카레에 넣은 당근을 남김없이 먹은 일.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반을 달려 도착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날 같은. 타인의 칭찬에 “그럴 리가요”라고 손을 내젓는 대신 당당히 고맙다고 말한 것 또한 칭찬 스티커를 받을 만했다. 


그런데 칭찬을 비축해 놓은 곳간이 늘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가급적 대비책을 준비해 두는 편이 좋다. 마음이 절박할 때 나는 주로 산책을 한다. 눈앞이 깜깜하고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시작과 끝이 명확한 행위가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더불어 걷는 동안에는 생각의 속도가 보폭과 비슷해지거나 느려진다. 그 덕분에 나는 섣부른 좌절은 잠시 뒤로 늦추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망한 원고는 다시 쓰면 된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돌파해 나갈 것이다. 칭찬받은 과거의 자신을 상기하며 힘을 북돋았다. 


하야카와가 준비해 온 대사를 읽은 뒤 상사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지금처럼 바바짱을 격려해 주었다면 회삿돈 3억 엔을 횡령한 뒤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바바짱은 하야카와와 가깝게 지낸 회사 동료다. “이제는 너무 늦은 이야기 인가?” 스스로에게 고백하듯 그는 하야카와를 향해 되묻는다. “늦었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며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했던 어떤 칭찬들을 떠올렸다. 그 칭찬에 기대어 성 장한 순간에 대해서도. 무더위 한가운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해묵은 고민과 자괴감을 말끔히 씻어내는 칭찬이었다. 내가 나의 재능을 더이상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혹시 이렇게 평생 칭찬만 갈구하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그런 슬픈 예감이 들지만 그건 그것대로 다행인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역시, 칭찬은 사양하고 싶지가 않으니까. 어떤 칭찬은 몸치인 나도 춤추게 만든다. 



도서 <저는 이 정도가 좋아요>의 본문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전문은 종이책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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