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아닌 생존 때문에 먹는 엄마의 돈까스 회고록
혹시 빵 먹을때 수프에 찍어 먹어본 사람?
아마 많이 있을것 같다.
뻑뻑한 빵을 촉촉하게 적시면 먹기도 편하고,
수프 특유의 짭잘한 맛이 더해져 감칠맛이 난다.
그렇다면 혹시 돈까스 먹을때 수프에 찍어 먹어본 사람?
아마도 별로 없지 않을까?
조금 유별났던 내가 돈까스를 먹었던 최초의 기억은
바로 수프에 찍어먹은 것이었다.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았던 어느 경양식 돈까스집.
나름 인테리어에 신경쓰고 해서 그런지 가격도 조금 비쌌다.
수프도 나오고 식전 빵도 나오고 후식까지 제공하는 풀코스 음식.
생일이나 입학식, 졸업식 같은 특별한 날에는 늘 경양식 집 돈까스를 먹었다.
나는 돈까스도 좋아했지만 특히 수프를 좋아했다.
수프를 위해서 돈까스를 먹었다고 해야하나?
수프에 돈까스를 흠뻑 적셔서 먹었을때 그 맛은 뭐랄까.
어린 나이에도 '호사스러움'과 '여유'를 느끼게 하는 맛이었다.
당시로써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번쩍이는 은빛 커트러리.
에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하나하나씩 서빙해주는 대접받는 느낌.
분위기 좋은 그 곳에서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씹었던 두툼한 돈까스.
수프맛이 더해져 짭짤하면서도 촉촉한 느낌!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양식 돈까스집들은 많이 사라졌고
돈까스는 짜장면처럼 흔하디 흔한 음식이 되어버렸다.
지금 나에게 돈까스는 그냥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이다.
입 짧은걸로 유명한 우리 아이들에게 돈까스는 그나마 잘 먹는 음식!
요리에 별로 취미가 없는 나는 맛집이라고 소문난 돈까스집을 찾아내거나
냉동 돈까스를 쟁여놓는 것이 일상이다.
아이들과 요즘 돈까스를 같이 먹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옛날의 그 맛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추억이 덧입혀지면 사실과 다르게 왜곡해서 기억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꽤 많은 돈까스를 먹어봐도 뭔가 빠진것 같고 아쉬운 맛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제일 중요한 차이를 잊고 있었다.
요즘 돈까스 집들은 왠만해서는 수프를 주지 않는다!
일본식 돈까스가 대세인데 소스 맛조차 좀 많이 다르다.
만일 어렸을때의 내가 지금으로 온다면 이게 돈까스냐고
수프는 어디 있냐고 실망했겠지.
수프 말고도 옛날의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또다른 이유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어렸을때의 나는 돈까스 자체의 맛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대부분 아이들을 먹이러 가는 입장이다.
돈까스 자체의 맛을 즐기기 보다는 아이들이 잘 먹는지, 버릇없는 행동은 하지 않는지 신경쓰느라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식당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 밥을 먹을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신경쓰느라 음식을 맛본다기 보다 배를 채우는 것에 급급한 상황.
재료 자체의 식감이나 양념이 어우려져 내는 맛을 음미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돈까스가 너무 먹고 싶어진다.
조만간 신랑과 함께 근사한 인테리어의 경양식 돈까스 집을 가야겠다.
그리고 수프를 리필할 정도로 듬뿍 찍어서 옛날의 그 맛을 음미해야지.
돈까스. 수프 때문에 먹는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