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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방송작가 Sep 05. 2021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내리막길을 반긴다.

내가 자전거를 처음 탄 것은 남보다 늦은 중학교 1학년 때다. 뒤에 잡아주는 사람 없이 혼자 자전거를 배워야 했던 내가 찾은 방법은, 내리막 길이었다. 내리막 길에서는 페달에 발만 올려도 자전거는 술술 내려가, 핸들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어서다. 나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 내리막길에 앞에 섰다. 평지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웬걸, 가파른 내리막길을 보니, 겁이 덜컹 났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전거를 탔다." 말하고 싶지만,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옆집 동생 친구한테 가서, 안장에 앉아도 땅에 발이 닿는, 어린이용 자전거를 빌려서 내리막길로 갔다. 핸들 균형을 놓치면 발로 땅을 밟으면 되니까, 넘어질 염려가 없어, 편하게 내리막 길을 달렸다. 균형감각을 익히고 난 후에는, 페달을 밟으며 타는 건 쉽게 해결됐다. 자전거에 재미를 붙인 후, 여성용 자전거는 시시하게 느껴져, 동네 아저씨의 짐자전거를 빌려서 타기도 했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전교에서 제일 작았던 내가 어른 짐자전거를 타는 데는 요령이 필요했다.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왼발만 페달을 밟은 채, 오른발로 땅을 밀어서 자전거를 굴러가게 한다. 자전거가 알아서 굴러가면 오른발을 들어 올려 안장으로 뛰어올라 앉아, 양발로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달리는 거다. 큰 자전거는 땅에 발이 닿지 않기 때문에, 탈 때보다 내릴 때 조심해야 한다. 오르막에 막 진입해 살짝 속도가 느려질 때,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게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 힘들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슴이 시원해질 때까지 많이도 달렸다. 


지금은 겁이 나서, 짐자전거는 탈 엄두도 안 난다. 그 시절 겁 없이 자전거를 탔던 것은, 잘 탄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가슴속 답답함을 풀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요즘 다시 자전거가 타고 싶어 져서,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 남동생에게서 안 타는 전기자전거를 얻어왔다. 그런데 아직 그 자전거는 3주째 작은방에 모셔져 있다. 10년 넘게 자전거를 안 타다가 안장이 높은 자전거를 타려니까 넘어질까 불안하다.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할까 두려워 멀리서 쳐다만 보듯, 나는 자전거를 잘 모셔두고, 한 번씩 슬쩍 쳐다보고만 있다.


인생에서는 내리막 길을 꺼려하지만,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은 내리막을 반긴다. 두발로 힘들게 페달을 밟지 않아도 술술 편하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다시 초보자가 된 나는 자전거를 탈 때도 인생에서도, 내리막 길 앞에 서면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처음 자전거를 배웠을 때처럼, 넘어지지 않게 나를 지탱해준 내 발을 믿고 달려볼 거다. 이 가을 길도, 내 인생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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