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아주 사소한 위로
딱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보다 더 좋은 내용이, 소설이 끝난 후 책 뒤쪽 '작가의 말'에 적혀 있다.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에게 얹혀살았다... 하루는 내가 "누가 아침마다 내 책상만 치워줘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될 텐데"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이층 내 방에 올라와 책상을 말끔히 치운 후,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비우고, 물로 말끔히 씻어 다시 갖다 놓으셨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며, 재떨이나 담배꽁초가 쌓고 있는 아들을 보고, 화낼 만도 한데, 김영하 작가 아버지는 아들의 투정에 화내지도 흘려듣지도 않고, 책상을 치우고 재떨이를 비워줬다.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아마 알았을 것이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금 하는 글쓰기가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는 믿음임을. 매일 자식의 책상을 치워주는 모습에서, 김영하 작가는 자식이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라는 아버지의 믿음을 봤을 것이다.
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땅에 떨어져 숨을 헐떡이는 물고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한 바가지의 물이다. 훗날 바다를 끌어다 준다고 해도 물고기를 살릴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쓸데없는 삽질 같을 때, 실력 없이 허황된 꿈만 좇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는 할 수 있다고,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거라고 믿어주는,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가족이든, 친구든, 모르는 그 누구든, 사소한 위로가, 마음에 우러나오는 응원 한마디가, 마라톤 선수를 뛰게 하고, 습작기 작가의 글쓰기를 이어가게 하고, 고개 숙인 취업준비생을 다시 일어서게 한다. 지금 내 눈에 그 한 사람이 안 보이지만, 믿어보자. 나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공기는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듯, 나를 믿고 응원하는 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