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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방송작가 Sep 17. 2021

우리에게 필요한 아주 사소한 위로

딱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보다 더 좋은 내용이, 소설이 끝난 후 책 뒤쪽 '작가의 말'에 적혀 있다.

'변변한 벌이도 없이 습작을 하던 시절, 나는 부모에게 얹혀살았다... 하루는 내가 "누가 아침마다 내 책상만 치워줘도 꽤 괜찮은 작가가 될 텐데"라고 투덜거렸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이층 내 방에 올라와 책상을 말끔히 치운 후, 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를 비우고, 물로 말끔히 씻어 다시 갖다 놓으셨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알아주지 않 글을 쓰며, 재떨이나 담배꽁초가 쌓고 있는 아들을 보고, 화낼 만도 한데, 김영하 작가 아버지는 아들의 투정에 화내지도 흘려듣지도 않고, 책상을 치우고 재떨이를 비워줬다.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아마 알았을 것이다. 아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금 하는 글쓰기 쓸데없는 짓이 아니라믿음임을. 매일 자식의 책상을 치워주는 모습에서, 김영하 작가는 자식이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라는 아버지의 믿음을 봤을 것이다.


내가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땅에 떨어져 숨을 헐떡이는 물고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한 바가지의 물이다. 훗날 바다를 끌어다 준다고 해도 물고기를 살릴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쓸데없는 삽질 같을 때, 실력 없이 허황된 꿈만 좇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는 할 수 있다고,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거라고 믿어주는,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가족이든, 친구든, 모르는 그 누든, 사소한 위로가,  마음에 우러나오는 응원 한마디가,  마라톤 선수를 뛰게 하고, 습작기 작가의 글쓰기를 이어가게 하고, 고개 숙인 취업준비생을 다시 일어서게 한다. 지금 내 눈에 그 한 사람이 안 보이지만, 믿어보자. 나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공기는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듯, 나를 믿고 응원하는 그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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