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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Apr 11. 2022

무령왕과 요부코항의 오징어회

규슈에 새긴 한국사 2

임진왜란이 시작된 곳, 히젠 나고야성 (brunch.co.kr)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히젠 나고야성 천수대에서 코앞인 듯 보이는 가카라시마(加唐島)라는 섬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武寧王, 462~523, 재위 501~523)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 무령왕이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그것도 저 볼품없이 작은 섬에서? 의아해하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의 탄생설화는 우리 측 기록이 아닌『일본서기(日本書紀)』 <웅략기(雄略紀)> 5년조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지요.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고 있던 백제의 개로왕은 구원병을 요청하러 동생 곤지를 일본으로 보냅니다. 곤지는 떠나면서 이유가 명확 치는 않지만 임신 중인 형의 부인을 달라고 합니다. 개로왕은 곤지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단지 출산하면 자식은 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왜국으로 가는 중 배가 흔들려서 쓰쿠시(규슈의 옛 지명)의 가쿠라시마(各羅島, 지금의 가카라시마)에서 아기를 낳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본 열도에서 태어난 아이를 섬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시마군(島君)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바로 훗날 무령왕이며 그래서 백제인들은 이 섬을 국주도(國主島)라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형의 부인을 달라는 곤지의 비상식적인 요구를 전하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백제를 폄하하려는 조작이라 여겨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해왔습니다. 실제로 일본서기의 5세기 이전 기록들에서 상당한 오류가 발견되었기에 불신은 더욱 깊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1년 공주 송산리고분군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무령왕의 능이 발견되면서 국내 사학계의 정설이 순식간에 흔들리는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무령왕(25대 왕, 462~523, 재위 501~523)이 전임 왕인 동성왕(24대 왕,?~501, 재위 479~501)의 둘째 아들이라 했는데, 막상 무령왕릉의 매지권에 적힌 생졸년도를 보면 무령왕은 정황상 동성왕의 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기록에 오류가 발견된 셈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무령왕과 왕비의 관은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는 고마야키(高野槇)라 불리는 일본 열도의 남부지방에서만 자라는 상록 침엽수였으니 당시 우리 학계가 받은 충격은 무척 컸습니다. 이로써 일본서기의 무령왕 탄생설화는 다시금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무령왕은 대체 누구일까요? 일본서기의 기록을 100% 신뢰할 수는 없을지라도, 국내 사학계에도 무령왕이 사마왕(斯摩王)으로 불린 것이 일본어의 시마(島)와 통하는 것으로 지금은 이해되고 있으며, 무령왕이 동성왕이 아닌 개로왕 혹은 곤지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백제의 정치적 상황이 긴박했던 것과 백제와 왜의 사이가 마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죽마고우와도 같은 사이였음을 고려해 무령왕의 일본 탄생설에 가능성을 두고 지금까지 활발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라쓰의 요부코(呼子)항에는 하루 단 4차례 가카라시마로 들어갔다 나오는 배가 운항되고 있습니다. 그 배의 승선객은 200여 명가량의 가카라시마 주민이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낯선 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아졌습니다. 바로 무령왕의 탄생지라 알려진 가카라시마의 오비야우라(オビヤ浦)동굴을 답사하는 한국인들의 발걸음 때문입니다. 20여분 바다의 물살을 시원하게 가른 배는 드디어 가카라시마에 도착합니다. 섬에서는 1시간여 여유가 있을 뿐입니다. 타고 들어간 그 배를 다시 타고 나와야 하기 때문이지요.   


가카라시마로 가는 작은 배가 머무는 한가로운 요부코항 선착장입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이 작은 섬마을 주민들은 친절하게 한글 안내판, 표지판을 만들어 놓고 한국인을 반깁니다. 2006년 충남 공주 시민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무령왕릉의 모습을 본뜬 무령왕 탄생 기념비를 지나 15분가량 오르다 보면 오비야우라 동굴에 도착합니다. 동굴 옆에는 아기를 목욕시킨 우물 유적도 있습니다. 우물 유적이 훼손되고 동굴 앞까지 쓰레기가 밀려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만, 참 신기합니다. 1,500년 전 백제와의 인연을 가카라시마 주민들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요. 일본서기에 명시된 무령왕의 탄생일인 음력 6월 1일에는 탄생제까지 지내고 있다고 하니 더욱 놀랍습니다.       


가카라시마에 도착하면 무령왕릉을 본떠 만든 '백제 무령왕 생탄지'비를 만나게 됩니다.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오비야우라 동굴 가는 길 표지판을 따라 올라갑니다.
바다를 향한 오비야우라 동굴이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금줄이 처져있고 동굴 안쪽에는 마치 방금 제를 끝낸 듯 여기저기 사람의 손길이 미친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한·일 두 나라가 공통으로 발견할 수 있는 역사 속 사례는 분명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 우호의 교류사를 하나씩 발굴해 나가는 것은 양국의 미래, 나아가 동아시아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합니다. 역사를 통해 양국이 화해할 수 있고 다시 신뢰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해 봅니다.   




이제 다시 물길을 가르며 아련히 멀어지는 가카라시마를 뒤로 하고 요부코항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요부코 항의 명물인 싱싱한 오징어회를 맛볼 시간입니다. 투명하고 푸른 오징어 회는 길어야 오후 서너 시까지만 맛볼 수 있습니다. 오징어잡이 배가 밤새 잡아 올린 오징어를 새벽에 요부코항에 내려놓으면 식당들은 그날그날의 신선한 오징어를 제공한 뒤 미련 없이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접시 위에서 여전히 다리를 꼼지락거리는 창백한 오징어를 맛봅니다. 아... 별미입니다. 여기서 태어난 무령왕이라 한들 이런 싱싱한 오징어회를 맛보셨을까요? 저는 왕보다 행복한 사람이군요~^^ 

히젠 나고야성 터에서 시작된 가라쓰 답사는 무령왕과 오징어회로 갈무리됩니다.         

   

요부코 항의 명물, 오징어회. 아..잊을 수 없는 맛입니다!


일본 규슈에 새겨진 한국, 한국인, 한국사를 찾는 여정이 계속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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