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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Apr 05. 2022

임진왜란이 시작된 곳, 히젠 나고야성

규슈에 새긴 한국사 1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땅은 어디일까요? 쓰시마나 이끼 섬 같은 작은 섬들은 제외하고 말이지요. 한국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이 해류를 따라 흘러 당도하는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그곳은 바로 규슈(九州)의 ‘가라쓰(唐津, 당진)’입니다. 종종 라면 봉지 같은 한국의 쓰레기가 도착하기도 한다는군요ㅡ.ㅡ     


가라쓰는 규슈 사가현(佐賀縣) 북서부에 위치한, 대한해협에 면해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한국의 충남 당진시(唐津市)처럼 예로부터 당나라로 가는 배가 떠났던 교역 항구 중 하나였지요.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한진(韓津)’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한반도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에 비해 항해나 선박 기술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한반도를 떠난 배가 해류를 이용해 쉽게 당도할 수 있는 일본 땅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라쓰에는 유독 한반도와 관련된 이야기와 흔적이 곳곳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흔적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후쿠오카 공항으로 들어가 차를 빌려 가라쓰로 곧장 향합니다. 차로 1시간이면 충분하지요.


규슈(九州) 사가현(佐賀縣) 가라쓰(唐津)시 히젠 나고야성 터의 위치입니다.


400년 된 소나무 100만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도열한 ‘무지개 솔밭(虹の松原)’의 장관도, 가라쓰 시내 어디서든 눈에 확 들어오는 무학성(舞鶴城, 학이 춤추는 듯하다는 가라쓰성의 천수각)도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합니다. 가라쓰 성에서 17km가량 떨어진 히젠(肥前) 나고야성(名護屋城)터로 곧장 향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우리 역사 전체를 통틀어 백성의 고통과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전쟁입니다. 일본의 약 15만 대군이 1592년 4월 부산포로 쳐들어왔고 당시 선조 임금은 의주까지 몽진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명의 원군과 전국 각 지역의 의병, 적의 보급로를 끊은 이순신 장군 지휘하의 수군의 활약이 없었던들 조선은 패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 전쟁에 통분을 느끼지 않을 한국인은 없겠지만 이 전쟁이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아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임진왜란이 시작된 곳은 바로 히젠 나고야성입니다. 히젠 나고야성 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1년 전국의 다이묘들을 불러들이고 불과 다섯 달 만에 축성한 거대한 침략 기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전쟁에 패배하고 병사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히젠 나고야성을 의도적으로 허물어버립니다. 조선과 국교를 재개하기 위한 제스처일 수도 있고 다른 다이묘가 이 거대한 성을 차지하는 것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로 히젠 나고야성은 황량한 성터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 진영이 가득 차 있던 영화롭던 시기의 모습이 <히젠 나고야성도 병풍(肥前 名護屋城圖 屛風)>에 남아있는데, 현재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요.               

                                              

히젠 나고야 성터에서 바라본 사가현립 나고야성 박물관입니다.

    

나고야성 박물관은 일본의 그 어떤 도시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이웃 나라에 대한 배려심과 따뜻함을 가진 특별한 박물관입니다. 그곳은 임진왜란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교류사를 테마로 전시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대사 부분은 좀 아쉽습니다. 임진왜란에 비해 전시 분량도 적지만 자세한 설명이나 솔직한 연구 성과를 보여준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로 번역해 놓은 한 패널 앞에서 가슴속 무언가가 쑤욱 내려가면서 눈물이 핑 도는 느낌을 받습니다.      

   

“분로쿠·게이쵸의 역(文祿·慶長의 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일으켜진 침략전쟁이었다. 조선에서는 의병의 봉기 등을 계기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이를 격퇴했다. 그러나 전후 7년간에 걸친 이 전쟁

은 조선 전역에 피해를 미쳤고 많은 혼란을 초래해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 전쟁으로 인해 조선의 국력은 쇠퇴하고 부흥에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


‘분로쿠·게이쵸의 역(文祿·慶長의 役)’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일본식 명칭입니다. 당시의 연호가 분로쿠(文祿)와 게이쵸(慶長)였던 까닭이지요. 역(役)은 전쟁, 싸움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이 패널의 글에서는 우호의 마음이 전해집니다.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집니다.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입힌 존재가 솔직하게 시인하고 나설 때 화와 분노를 내려놓게 됩니다. 심지어 상처를 치유받기까지 합니다. 


출간 이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 2017년 뉴욕타임지, BBC 등에서 '올해의 책 10'으로 선정된  장편소설 '파친코(Pachinko)'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 여인 '선자'를  중심으로 재일교포들이 일본에서 겪은 멸시와 차별, 처절한 삶을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작가인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인이 모두 사악하다거나 식민지를 경영한 역사를 가진 나라의 사람이 모두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악은 존재하며 나에게 있어서 악은 자신의 역사에 관해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역사를 사실 그대로 인정한다면 사람들은 화해를 고려해보기 시작할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역사에 솔직해지는 일, 잘못을 시인하고 고통받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 그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보편적인 인간의 심성과 본성에 따르는 일일뿐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상처 준 일이 없는지 고심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나고야성 박물관은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대면하고 배워나가는 것은 한·일 양국과 또 양국의 관계에 모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확신을 주는 좋은 박물관입니다.   

          

우리의 거북선과 일본의 지휘선 오오아타케부네(大安宅船)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군요.
전시된 '히젠 나고야성도 병풍(肥前 名護屋城圖 屛風)'을 보며 전국에서 몰려든 다이묘들과 그들의 군사들로 북적이는 히젠 나고야성을 떠올려보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한국에서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방영되었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과 <임진왜란 1592>(2016)에서 가라쓰의 나고야(名護屋) 성을 일본 혼슈 중부에 있는 아이치현의 나고야(名古屋)로 잘못 소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특히 다큐멘터리 드라마, 극사실주의 드라마(Factual Drama)라는 새로운 장르로 야심 차게 시도된 <임진왜란 1592>조차 임진왜란의 시작지인 나고야성을 제대로 고증해 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고향인 아이치현의 나고야(名古屋)의 이름을 따서, 가운데 글자 古를 護로 바꿔 가라쓰 히젠 마을의 새로운 성에 이름 붙였는데, 발음은 둘 다 나고야로 같기 때문에 혼동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이제 폐허가 된 히젠 나고야성의 가장 높은 곳, 천수각이 있었던 천수대로 올라갑니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다른 관람객들은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다들 돌아서는 분위기였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 하늘이 도왔을까요? 비바람을 뚫고 천수대에 간신히 올랐을 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칩니다.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이곳을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는지를 말입니다. 부산까지 최단거리이며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이라 많은 배를 숨기기에 이로운 지리적 이점에 더해, 수심이 깊어 큰 선박도 쉽게 정박할 수 있으며 앞바다에 가베시마(加部島), 가카라시마(加唐島) 같은 섬이 북풍을 막아주어 항구로서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수대에 서서 한반도가 위치한 북쪽을 향해 서니 비 그친 뒤의 멋진 풍광이 눈앞에 활짝 펼쳐집니다.  


이곳 나고야성의 축조 공사를 맡았던 임진왜란의 1,2,3군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의 모습도 떠올려 봅니다. 히젠 나고야성에서 3km 안에 주둔했던 전국에서 몰려온 다이묘들의 130여 진영과 상인들로 붐비는, 오사카에 이은 당시 제2의 도시 히젠 나고야를 떠올려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전쟁을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천수대로 오르는 길의 이끼를 덮어쓴 성돌과 나무가 긴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주는군요. 이끼가 덮어버린 시간의 흔적을 애써 찾아봅니다.
히젠 나고야성의 가장 높은 곳, 천수대에 오르면 사방이 시원하게 뚫리는 전망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일본 규슈에 새겨진 한국, 한국인, 한국사를 찾는 여정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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