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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강 Sep 03. 2021

열심히 도망쳤으나 원점으로 돌아왔다

인생에서 미룰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이루고픈 꿈이구나

바다를 볼 땐 어쩐지 소설을 읽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_ 미놀타 X-300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소설가였다.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유아기 시절, 엄마는 서적 판매원이었고 (후에 나는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사내가 ‘서적 외판원’이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를 더 연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집에 책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환경만으로 서사에 탐독하는, 문장을 다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꿈꾸었다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할머니는 내가 국어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를 닮아 글 읽는 걸 좋아한다고 하셨다. 누군가는 내가 어린 시절 결핵을 앓아 아팠던 기억 때문에 소설을 읽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상이 소설을 쓰며 ‘결핵 환자 김해경’에서 도피하려고 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것이라고. 또 누군가는 내가 어린 시절 내 이름을 딴 슈퍼집 딸내미였기 때문에 소설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세계로 도피하기 위한 방편 아니었겠느냐고. 또 누군가는 내가 남에게 내 비극이나 불행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잔뜩 자상한 사람인 체하면서 사실은 속이 곪은 인간이라 거짓인 소설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조금은 신랄하게.


모두 다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하나의 단정적인 이유일 수도 없고 내가 인식할 수 있는 것만이 이유가 될 것도 아니다. 아주 많은 우연과 사건들이 겹치고 겹치면서 ‘소설가’라는 하나의 교집합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나의 삶의 궤적은 소설을 따라간다.

중학교 1학년, 국어 선생님께서 나를 교무실에 부르시더니 매달 나오는 학교 신문에 소설을 연재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으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부담을 느낄 것이라 생각을 했는지 지면 크기며 분량이 얼마 안 된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런 말들은 귀에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학교 신문’의 한 꼭지, 그게 뭐라고, 나는 마치 대단한 청탁을 받은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을까. 학교 신문 발행이 흐지부지되면서 소설을 완결 맺지는 못했지만 매달 정해진 시간 안에 무언가를 써야 하는 경험 자체가 즐거운 스트레스였다. 국어 선생님과 교무실에 앉아 원고를 교정하던 순간도 마치 내가 ‘진짜 작가’가 된 것만 같아 얼마나 즐거웠던지.

고등학교 1학년, 나는 김승옥의 작품을 읽고 한밤을 뒤척인다. 내가 되고 싶고 갖고 싶고 이루고 싶은 꿈이 점점 구체화된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의 담당 과목이 문학이었다. 박완서 작가의 ‘그 여자네 집’ 수업을 들을 때 마음에 일렁이던 문장들. 선생님은 시를 쓰시는 문인이셨고 내 장래희망 칸에 적힌 ‘소설가’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해 주셨다. 나는 김승옥도, 박완서도, 이청준도 모두 그 선생님에게 배웠고 사랑하는 작품의 수업 때마다 묘하게 톤이 달라지시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나의 감성 어느 한 켠을 빚어주었다. 나는 당연하게 국문학과에 진학했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상도 받았다.




그런데 나는 그 상을 받은 이후로 단 한 편의 소설도 제대로 써내지 못했다.

내 가장 절친한 친구는 내가 학원 강사 일에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고, 일을 또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성격인 데다 체력까지 좋지 않아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없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내가 먹고 살만 해져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학원 강사 일로 돈을 벌게 되니까 가난이나 비참 같은 데서 정신적으로 벗어나게 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또 누군가는 내가 철이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사회화가 되는 과정에서 내 비극이나 아픔을 객관화화게 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모두 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르다. 나는 오히려 그 상을 받음으로써 깨닫게 되었다. 나는 소설가로서 재능이 없는 사람이란 것을. 역설적이게도 나는 나의 수상으로 내 한계를 알게 된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품어 온 나의 꿈이 나의 헌신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란 희미한 예감. 다른 사람들은 순서를 뒤집어서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강사 일에 집중해서 소설을 쓰지 않게 된 것이 아니라 소설에 대한 열망을 내려놓기 위해 강사 일에 집중한 것이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기 위해 다른 연인이 꼭 필요한 배덕한 사람처럼.


그래서 나의 20대는 내가 소설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 소설은 그저 읽고 즐기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사람, 가끔 무언가를 끄적이고 싶어 진다면 딜레탕트 정도면 되는 사람을 꿈꾸는 시기였다. 오래 간직한 꿈을 마음에서 쉬이 내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아니 에르노를 읽고도 울었고 에밀 아자르를 읽고도 울었다. 그들의 빛나는 재능은 나의 등을 밀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간절한 삶은 자꾸 내가 소설 근처를 서성이게 했다. 그 긴 터널 같았던 시간 동안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 재능이, 내 열망이 아깝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이 너무도 보잘것없다는 것을 알았고 열망도 언젠가는 식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식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쓰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아주 간절하게.


그리고 30대가 되었다.

나는 자꾸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생활이 안정적이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과 별개로. 나는 이제 대다수 많은 것들을 ‘내가 가질 수 있는 것,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의 범주로 잘 구분하게 되었고 후자에 속하는 것들에는 미련두지 않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라는 인간으로 조각을 만든다면 지금의 나는 완전한 조각이 아니라 토르소일 것 같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을 쓰기 시작했다.

나에게 재능은 없지만, 도저히 열망이 버려지지 않아서. 내가 되고 싶은 것이 '유명한 소설가'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그런 글을 왜 써야 하나,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던 20대를 지나 온 나는 이제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혼자서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나를 속이지 않고, 문장을 잘 다듬고 단어들을 알맞은 자리에 앉힐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그러므로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잃어버린 내 팔다리를 찾는 것만이 지금 나의 유일한 목표다. 아주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서인지 문장이 마음대로 튀고 있는 것은 앞으로 내가 헤쳐나가야 할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때때로 '유명한'에 방점을 찍고 싶을 때 그런 나를 잘 다독이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일만으로도 바빠 죽겠는데 왜 굳이 정신과 시간을 바쳐가며 글을 써야 할까?’란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쿵하고 내려앉은 줌파 라히리의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


나는 왜 글을 쓸까? 존재의 신비함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나 자신을 견뎌내기 위해서다. 내 밖에 있는 모든 것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마음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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