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사강 Sep 10. 2021

마음속 20대 청년이 70대 노인이 되어있었다

김승옥 문학관에서 진짜 김승옥을 만난 진귀한 경험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 밤이 되면 거리에 나타나는 선술집-오뎅과 군참새와 세 가지 종류의 술 등을 팔고 있고, 얼어붙은 거리를 휩쓸며 부는 차가운 바람이 펄럭거리게 하는 포장을 들치고 안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고, 그 안에 들어서면 카바이드 불의 길쭉한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염색한 군용 잠바를 입고 있는 중년 사내가 술을 따르고 안주를 구워주고 있는 그러한 선술집에서, 그날 밤,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의 첫 문장이다. 

많은 문장이 겹쳐진 장문인데도 술술 읽힌다. 그런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상한 문장이다. 만남의 배경인 선술집에 대한 서술이 장황하고 구체적이다. 그에 반해 반해 만남의 주체이자 주인공인 세 사람은, 또 그들의 만남이라는 중요 사건은 그저 단순히 '우리 세 사람은 우연히 만났다'라고 수사 없이 건조하게 처리되어 있다. 또 '누구나 알 수 있겠지만'이라고 당연한 전제를 제시해 보편적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켜놓고는 이런 광경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위해 쓴 것처럼 장소와 그 장소가 자아내는 이미지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를 해두었다. 이 묘사 역시 특별할 것 없는데도 탁월하다. 나는 선술집에 가본 적도 없고 군참새라는 안주는 살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카바이드 불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데―더 근본적으로 나는 1964년 겨울을 서울에서 보낸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이 선술집의 모습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문장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은 선술집에서 나는 냄새와,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들, 뿌연 안개처럼 낀 연기들까지 상상해낼 수 있고,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샘솟는다. 이들은 대체 누구이며 왜 선술집에 와 있는 것이며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이며 어떤 사이가 될 것인가. 


인생을 흔들어놓을 첫사랑과의 첫 만남, 그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꽤 있을 것이다. 나에겐 이 작품이 그랬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고 없이 사랑이 시작된 것처럼 나는 김승옥에게 한눈에 매료당했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아침 자습시간에 국어 문제집을 풀던 중이었다. 물론 김승옥이라는 이름과 작품의 제목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열일곱, 막연히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던 나는 문제집 한 페이지짜리의 문장만으로 내 삶의 지축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사내의 자살 이후 안과 나의 대화가 펼쳐지는 대목이었다. 짧은 대화와 내면의 독백만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전해져 왔다. 이런 게 소설이구나. 내가 여태까지 봐왔던 것들은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구나. 문제를 푸는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의 시작과 끝을 알고 싶었다. 전문을 읽고 싶은 마음에 하루 종일 안달이 나 있었다. 석식을 먹고, 나는 야자를 '쨌다'. 걸리면 오리걸음으로 복도를 횡단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임선생님의 허락도 없이 야자를 짼 나는 영풍문고로 향했다.


열일곱, 나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인간성을 배웠고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삶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렴풋하게 '소설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배웠다. 김승옥, 선망과 열등감이 종이 한 장의 차이라는 것을 절절히 느끼게 한 작가. 김승옥은 서울대 불문과 2학년 재학 중에 <생명 연습>으로 등단한다. 나는 김승옥을 쫓아 서울대에 갈 수는 없으니 대학교 2학년 때 등단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21살, 나는 김승옥 같은 천재가 아니고 김승옥처럼 시대와의 불화를 체화한 세대도 아니라고 항변하면서도 엎드려 운다. 국문과에서 현대문학 시간에 김승옥을 배우면서 또 동경하고 또 좌절한다. 4.19 세대의 첫 포문, 한글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감수성의 혁명' 김승옥. 어떻게 감수성이라는 말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으며 대체 어떻게 해야 문단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지. 내 주관적인 생각일 수 있으나 김승옥을 수업할 땐 교수님들의 목소리에도 경탄이 묻어 있었다고 느꼈다.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이제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나의 가장 날카로운 부분을 그러모아 소설을 쓴다고 해도 이런 문장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또 반대로 내가 아무리 문장을 곱씹고 다듬고 붙이고 덜어내고 닦아내도 이런 문장을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김승옥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왜 소설가가 되지 않느냐고, 왜 소설을 적극적으로 쓰지 않는다고 물으면 나는 언제나 김승옥을 떠올렸다. 나에게 소설가의 기준은 김승옥이었다. 나에게 김승옥은 세월 속에 연마된 작가가 아니라 누구나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빛나는 재능으로 빚어진 작가였다. 죽었다 깨어나도 김승옥처럼 쓸 수는 없다는 절망적 체념이 나를 소설가에게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2018년, 나는 백발노인의 김승옥을 만났다. 


김승옥 문학관으로 향하는 길


2018년 여름, 순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 순천은 언제나 김승옥의 고장이었다. <무진기행> 속의 안개로 자욱한 가상도시 무진도 순천을 투영한 곳이었고 무엇보다도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라는 소설 속의 구절은 나에게 김승옥이 보고 자란 고장을 머릿속에 그리게 했다.


온 들에 황혼이 내리고 있었다. 들이 아스라하니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장식처럼 붙어 보였다. 그 바다가 황혼 녘엔 좀 높아 보였다. 들을 건너서 해풍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해풍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았다. 짠 냄새뿐, 말하자면 감각만이 우리에게 자신을 떠맡기고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것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우리들은 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것일까. 설화가 없어서 우리는 좀 우둔했고 판단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렇듯이 세상을 느끼고만 싶어 했다. 그리고 그들이 항상 종말엔 패배를 느끼고 말듯이 우리도 그러했다.


들에 황혼이 내리고 있다. 들 너머엔 높아 보이는 바다가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해풍이 불어온다. 바람은 촉각과 후각으로 감지되는데 어쩐지 그 냄새엔 패배의 냄새가 숨어있다.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기 시작한 1960년대의 산업화, 김승옥은 자신의 고향인 순천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묘한 일렁거림을 이런 문장으로 그려냈다. 바다로 감각되는 마을에 만족하고 사는 이들이 세상에서 '느낀' '패배감'의 구체적인 양태는 독자가 자신의 감정으로 그려내야 한다. 이런 문장은 경탄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순천 여행을 계획할 때부터 가장 큰 목적은 순천문학관 그중에서도 김승옥 문학관이었다. 

'혹시 김승옥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출발할 때부터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책을 챙겼다. 뇌졸중으로 투병하며 서울과 김승옥 문학관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기사도 접했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작가를 만났다는 글도 보았기 때문이었다.

순천문학관은 순천만 습지와 바로 붙어있다. 심지어 순천만 습지와 문학관을 향하는 새 도로명주소도 '무진로'다. 순천만 습지를 끼고 걷다 보면 드넓게 펼쳐진 산과 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새들을 볼 수 있다. 분명 50여 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일 텐데도 어쩐지 자연의 영속성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풍경만으로 이미 마음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문학관은 아담한 규모였다. 지역에 있는 문학관들이 대개 그렇듯이 지역을 대표하는 작가의 생애와 창작 연도에 대한 설명, 친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찬찬히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백발의 노인이 김승옥 문학관 옆 작은 건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혹시...? 그날 그 시각에 관람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여행의 동행자인 남자친구(지금은 남편)가 해설사분께 조심스레 여쭤보니 그분이 '김승옥 선생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이름 석자. 현실감이 없었다. 내가 책에서, 수업에서, 문제집에서, 모의고사에서 수없이 읽고 듣고 접하고 말한 이름. 내 표정과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해설사분이 선생님께서 잠시 시간이 되시면 싸인이라도 받고 가라고 했다. 어째서였는지 들고 온 책을 꺼내기가 머쓱했다. 문학관에서 다시 책을 사고 해설사 분과 함께 김승옥 선생님에게 갔다. 해설사분이 밝은 목소리로 선생님 팬이 왔다고 하자 흔쾌히 나와주셨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선생님과 악수를 하고 두서없이 어릴 때부터 선생님의 작품을 읽고 소설가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하도 읽고 또 읽어서 책이 너무 닳고 찢어져 같은 책을 또 사기도 했다고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내 말을 듣고 선생님께서 '고맙다'라고 하셨다. 혹여 내가 못 알아들을까 옆에서 '고맙다고 하셨다'라고 하신 해설도, 밥은 먹었냐는 제스처를 하신 것도 다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 그 순간에도 알았다. 이게 내 인생에서 아주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장면이라는 것을. 

날씨가 너무 더운 데다 선생님의 건강도 좋지 않아 만남은 짧았다. 그런데 전혀 아쉽지 않았다. 들어가시라는 인사를 할 때부터 내 목소리가 울음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보고 펑펑 울었다. 그날 내내, 나는 며칠을 앓고 난 사람의 기분이 되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나는 김승옥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막상 만난 것은 김승옥'선생님'이었다는 기분이었다. 더 우습게 말하자면 평생 활자로만 존재하던 작가가 갑자기 육화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했다.

나는 한평생 20대의 김승옥을 사랑하고 질투하고 동경했는데 백발의 김승옥 선생님을 만났다. 모든 인간은 언제나 늙는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보는 노인들은 언제나 나보다 더 많이 늙었던 사람이므로. 그런데 스물둘의, 혹은 스물넷의 김승옥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노인이 된 김승옥을 만나니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 속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 젊음의 교만은 절대 아니었다. 늙는다는 것이 서러운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예술가도 한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 천재도 언젠가는 나이 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다.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면 이런 것이리라.


그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쓰던 작가에게 언어능력을 뺏어갔다고 분개하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무진기행> 같은 작품을 쓴 작가가 신에게 귀의했는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인간성이고 삶이다. 생은 원래 많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인간에겐 생이란 의도 없이 잔인한 것이다. 

나는 이 날을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마음이 순식간에 복잡해지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대체 내가 왜 우는 것인지 18년에도 21년에도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51년쯤 되면 알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 야비한 방법이지만 김승옥의 산문에 나오는 한 문장으로 대신해 설명하기로 한다.


문학적 체험으로서 이 일생이라는 말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아직 모르긴 몰라도 세상에서는 쓸쓸한 일뿐일 것 같습니다.

 나는 김승옥의 소설로 소설을 배웠다. 그리고 김승옥 선생님과의 짧은 마주침으로 생의 한 부분을 배웠다. 


하나슈퍼 얘기도 할 거고 사인도 공개할 거면 대체 왜 브런치 필명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인용한 소설 속 문장은 모두 김승옥,『생명연습』, 문학동네

산문집의 문장은 김승옥, 『뜬 세상에 살기에』, 위즈덤하우스

이전 01화 열심히 도망쳤으나 원점으로 돌아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