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익는다는 것
텃밭 끝자락, 붉게 익은 고추들이 옹기종기 매달렸다.
햇빛을 머금고도 뜨겁다 말하지 않고,
비를 맞고도 젖은 티 내지 않는,
그저 익어가는 데만 온 마음을 쏟는 붉은 고추.
붉은 고추를 보면 우리가 강화에 처음 이사 왔을 때가 생각난다.
다섯 살, 여섯 살 연년생 두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무작정 귀촌하던 때.
그때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이었다.
여름에 이사와 가을쯤 되니 동네 할머니가 고춧가루를 사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할머니가 달라는 대로 돈을 냈다.
한 근이 몇 그램인지, 한 근에 얼마 정도가 알맞은 가격인지 전혀 몰랐다.
모든 양념을 언니들이 대주었고, 김장도 올케가 내내 해주었다.
내 손으로 사 본 적이 없으니 감이 안 잡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터무니없는 가격을 받았다.
시골 사람들, 특히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순박한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붉은 고추도 처음엔 모두 연두색이다.
말랑하고 여리며, 아직 세상의 바람에 익숙하지 않은 빛깔.
그때의 나는 애기고추처럼 비리고 어리숙하기만 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다.
촉촉한 아침 공기처럼 상쾌하지만,
조금만 강한 햇살에도 금세 시들 것 같은 상태.
그때는 알지 못한다.
이 유약함이 얼마나 단단함으로 바뀔 수 있는지.
서울의 전세금을 빼서 이 년여 동안 우리는 신나게 놀았다.
특히 여름엔 날마다 손님들이 찾아왔고,
한 팀이 오전에 가면 오후에 또 한 팀이 왔다.
시골에 오면 으레 자고 가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
돈은 떨어져 가고,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둘이 글만 써서는 어림도 없었다.
그마저 노느라 글도 안 썼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민박,
이왕 이렇게 손님을 치를 바엔 돈을 받자.
하지만 간판을 거니 오던 손님들이 뚝 끊겼다.
민박 초창기엔 어설펐다.
이불도 제때 못 빨고,
손님이 오는 날 텃밭에서 말라가는 붉은 고추를 따느라 방 정리가 덜 된 적도 있었다.
첫 손님이 쓰레기를 봉지째 두고 간 날, 나는 괜히 내가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손님들은 아끼는 접시 세트 중 하나를 가져갔다. 내가 더 부끄러웠다.
그래도 하나씩 배웠다.
어떤 사람은 말없이 수건을 개켜주고 갔고,
어떤 손님은 낯선 집 냉장고에 감사 인사를 써 붙이고 떠났다.
손님이 다녀간 자리에 남은 건 이불의 체온과
내 안에 천천히 차오른 '익음'이었다.
고추는 하루아침에 붉어지지 않는다.
태양과 바람, 그리고 때로는 서늘한 그림자까지도
자기 안에 품어야만 비로소 뜨겁게 익을 수 있다.
말없이 받아들인 계절이, 끝내 자신을 물들이는 것이다.
시간이 가고, 이러저러 소문이 나 모르는 손님들이 방을 채웠다.
여름처럼 뜨겁던 손님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나도 익어갔다.
붉게 익는다는 건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 아니다.
흔들리고, 꺾이고, 다시 일어섰다는 기록이다.
묵묵히 버틴 낮과 밤이 쌓여 만든, 단단한 농도다.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색 하나로 모든 계절을 증명해 보이는 것.
어떤 고추는 조금 일찍 붉어진다.
어떤 고추는 끝까지 푸르름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틀린 것은 없다.
서로 다른 시간표 속에서, 각자의 빛을 완성할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누구나 맑고 연하다.
하지만 삶은 우리 안에 매운맛을 심는다.
상처도 주고, 깨달음도 안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내 얼굴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건 어쩌면 나도 익어가는 중이라는 신호일 거다.
붉은 고추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배운다.
눈부시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빨리 익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오히려 천천히, 묵묵히, 자신만의 속도로
붉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선
매운맛 하나쯤은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
부드럽기만 한 존재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때로는 자신의 매운맛으로
자신을 지키고,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기도 한다.
민박을 걷어치우기까지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약을 치지 않은 고추처럼 병에 들기도 하고,
지나친 바람에 가지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계절은 흐르고, 나도 언젠가 다시 피어났다.
고된 시간을 지나며 나는 나의 속도로 익어갔다.
텃밭의 순환처럼, 삶도 그런 식으로 조금씩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붉은 고추를 가만히 바라본다.
작지만 강하게, 숱한 상처 속에서 붉게 익어가는 삶.
생의 온도를 통과하며 스스로를 빛으로 물들이는 일.
나는, 내가 살아낸 시간에 대해 조용히 찬사를 보낸다.
나만의 뜨거움을 간직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