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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를 용서하지 못했을까

감정의 정체를 직면했을 때, 드러나는 내면의 진실

by 석은별

“그 일은 이미 지나갔어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가 반복해온 말이었다. 정리된 듯 보이는 목소리, 평온하게 가라앉은 표정, 그 말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의 한 자락에는 늘 알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정리된 것 같은데, 어딘가에는 여전히 말해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감정의 잔여물이었고, 나는 그 감정의 이름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용서하지 못한 감정’이었다.


용서라는 이름 아래 숨은 억압

우리는 자라면서 용서에 대해 많은 메시지를 듣는다.
"용서해야 착한 아이지."
"그래도 가족이잖아."
"너도 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해 봐."

이러한 말들은 감정을 경험하기도 전에, 이해와 수용을 먼저 요구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그 감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직면하는 일이지만, 그 과정은 생략된 채 ‘용서’라는 말이 먼저 강요된다.

그 결과, 감정은 내면의 어두운 방에 밀려나고 나는 ‘성숙한 사람’이라는 가면 아래 스스로를 소외시킨 채 살아가게 된다.


내가 미워했던 것은 누구였는가

어느 날 상담 중, 나는 한 문장을 꺼내게 되었다.

“저는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아요. 그냥, 지나간 일일 뿐이에요.” 그 순간 내 안에서 강한 저항이 일었다. 내가 말하는 ‘그 사람’은 사실, 나였다.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용서하지 못했던 것은 내 감정 자체, 그리고 그 감정을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당시의 나 자신이었다.

나는 분노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감정, ‘미움도 슬픔도 말하지 못했던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감정 없는 용서는 자기 배신이다

감정을 동반하지 않는 용서는 결국 자기 감정의 부정이며, 더 나아가 자기 존재의 일부를 잘라내는 일이다.

나는 타인을 이해하려 애쓰면서, 그 사람의 상황을 합리화하면서, 정작 그 일로 상처받았던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내 감정은 미세한 균열로 스며들었고, 반복되는 관계 패턴, 지나치게 참는 성향, 돌발적인 분노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감정은 억제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꾸어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


첫 번째 자각 – 나는 아직도 아프다

어느 날, 지극히 사소한 상황에서 격렬한 감정이 올라왔다. 상대의 무심한 말 한마디, 사소한 무시, 애매한 모욕감.

그 순간 나는 문득 내 감정을 인식했다.
“나는 아직도 아프다.”
“나는 여전히, 그 일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 자각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감정은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향해 처음으로 말했다.
“그래. 그때의 나는 분명히 상처받았고,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던 채 버텼지.”

이 자각은 치유의 시작이자, 진짜 용서의 출발점이었다.


용서는 감정의 끝에서 피어나는 선택

융은 용서를 ‘감정의 통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수용’으로 본다. 억눌린 감정을 경험하지 않은 채 도덕적 판단만으로 용서를 선언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다.

감정이 충분히 느껴지고, 그 감정을 말할 수 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용서는 의지의 행위가 된다. 그것은 감정의 억제도, 과잉도 아닌 자기 감정과의 진정한 화해에서 비롯되는 결정이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그땐 나도 어렸지.”
“지금 생각하면 별일 아니었어.” 라는 말로 감정을 덮어왔다.

그러나 나는 그 말들로 당시의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견뎠고,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고자 애썼다.

이제야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때의 너는, 정말 잘 버텼어. 네가 틀리지 않았어.”

이 말은 다른 누구를 향한 용서가 아니라, 내 감정의 진실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감정을 말하는 것이 곧 용서의 시작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용서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내 감정을 듣는다. 분노, 슬픔, 억울함, 수치심.

그 감정들이 충분히 말해질 때, 나는 자연스럽게 그 감정을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니라, 작고 진실한 반복을 통해 서서히 내 안에서 자라나는 태도였다.


나는 누구를 용서하지 못했을까

결국, 내가 가장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내 감정을 억압하고, 그 감정을 부끄럽다고 여겼던 나.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진실을 삭제했던 나.

이제 나는 안다. 감정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징후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으며, 그 감정을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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