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된 욕망이 들려주는 외면된 감정의 진실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욕망을 드러내는 일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은 때때로 ‘의존’이라 불리고, ‘집착’이라 해석되며, ‘부끄러운 감정’으로 내몰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욕망을 내면 깊숙이 감추게 된다. 그리고 그 감춰진 욕망은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무의식에 잠긴다.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그림자(Shadow)’라 불리는 자아의 어두운 측면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림자는 반드시 부정적이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거나,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한 자아의 일부다.
그림자에는 미움, 분노, 질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순수하고 절실한 감정, 사랑받고 싶은 욕망도 그 안에 들어 있다.
나는 그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분노하거나 실망했던 많은 상황들 속에는 사실 ‘사랑받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나’가 숨어 있었다.
상담 중 자주 듣는 문장이 있다.
“저는 원래 기대를 안 해요.”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도 없어요.”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이 문장들은 자립과 독립의 선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말 뒤에는 버려질까 두려운 마음, 기대를 접어야만 했던 감정, 그리고 사랑받고 싶다는 소망을 부정한 자아가 숨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혼자서도 괜찮아.”
“나한테 뭘 기대하지 마.”
이 말들은 강인한 사람이 되기 위한 주문처럼 되뇌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사랑받고 싶다는 말을 감히 꺼내지 못한 내 마음이 있었다.
그림자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삐딱한 말투, 과잉된 반응, 무관심한 척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나는 종종 가까운 사람에게 이유 없이 날카롭게 말하거나, 도움을 청하려다 끝내 입을 다문 적이 있다.
그때 내 안에서는 분명한 감정이 있었다.
"왜 나를 먼저 알아봐주지 않지?"
"왜 내 마음을 읽어주지 않아?"
"나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면 좋겠어."
그러나 그 마음을 솔직히 드러낼 수 없었던 나는 그 감정을 삐딱하게 왜곡해 표현했고, 결국 더 깊은 오해와 단절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림자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파괴한다.
어린 시절,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말을 줄이고, 감정을 감추는 방식을 배웠다. 사랑은 조건부였고,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왔다. 그 경험은 내게 하나의 신념을 만들었다.
“사랑받으려면 조심해야 한다.”
그 이후로 나는 늘 단단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늘 스스로를 조절하는 사람.
그러나 감정을 감춘다고 해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욕망은 더 깊은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나는 이제 안다. 그림자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수치심 없이 욕망을 바라보는 일이다.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 누군가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
그림자의 소리는 조용하지만, 그 소리를 들어주는 순간 나는 나와 다시 연결된다.
그림자는 감정의 폐기물이 아니라 감정의 보물창고다. 그 안에는 내가 오래도록 외면한 가장 진실한 마음이 숨어 있다.
“나도 사랑받고 싶었어.”
“나를 먼저 알아봐주길 바랐어.”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외로웠어.”
이 문장들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제 나는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랑받고 싶다는 말은 누구도 대신 말해줄 수 없다. 그건 스스로 꺼내어야 할 용기의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