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꿈 이후, 감정이 사라진 자리에 깨어나는 리듬
감정이 사라졌던 그날 이후, 나는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 나를 낯설게 바라보았다. 누군가 날 무시했을 때 느끼던 억울함도, 칭찬을 들었을 때 느끼던 들뜸도, 어느 순간 모두 조용히 침잠해 있었다. 그때 나는, 감정의 반응 없이 하루를 통과하는 경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라며 동시에 어쩐지 섬뜩했다. 마치 삶이 흘러가는 소리를 처음으로 또렷하게 듣는 느낌.
그 소리는 감정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 리듬'이었다.
그 리듬은 아주 작고, 느리고, 부드럽게 진동했다. 처음엔 그저 반복되는 생각이었고,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문장이었으며, 한없이 흐릿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하나같이 '반응'이 아니라 '출현'이었다. 감정이 앞서서 일으키는 반응이 아닌, 고요 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무엇. 나는 그것을 의식의 소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 소리는 명확하지 않았다. 처음엔 나조차도 그것이 생각인지, 감정인지, 직관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전처럼 격렬하지도 않고, 피로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삶이 흘러가는 방향을 부드럽게 가리키는 나침반 같았고, 내 안의 누군가가 조용히 말해주는 속삭임 같았다.
그 고요는 어쩌면 내가 꾸었던 그 절벽 꿈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나는 맨손으로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정체불명의 여자가 내 손을 짓밟았고 나는 아래로 떨어졌다. 그 후로 몇 차례 같은 꿈을 반복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몸에 밧줄이 감겨 바닥까지 떨어지지 않게 되었고, 결국엔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으로 꿈이 끝났었다.
그 꿈 이후, 나는 현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정적'에 빠져들었다. 격렬한 감정이 사라졌고, 무언가가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막연한 인식과 함께, 나는 감정 없이 하루를 살아냈다. 그 시간은 내가 살아 있다는 확신도, 죽어 있다는 실감도 없는 중간지대였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내 안에 무엇이 살아남아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다. 감정이 걷힌 자리엔 생각이 있었고, 그 생각 너머엔 감각과 의미가 함께 얽힌 진동이 있었다. 그 진동은 때로는 오래된 기억의 이미지로, 때로는 몸의 감각으로, 또 때로는 어떤 문장으로 다가왔다.
“너는 지금 이 방향으로 가고 있어.”
“그건 네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구조야.”
“지금 멈춰도 괜찮아.”
이러한 속삭임은 누구의 말도 아니었지만, 확실히 나의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감정이 사라진 뒤에야 들리는 나의 정신이었다. 나는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과 연결되는 첫 번째 감각을 회복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새로운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햇살이 떨어지는 방향을 바라보며 아무런 판단 없이 가만히 서 있기. 식사 후에는 커피잔을 쥐고 잠시 눈을 감고 그 온도를 느껴보기. 일을 하다 멈춘 순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 것.
“지금 나는 무엇을 듣고 있지?”
이 질문은 감정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감정 아래에서 작동하고 있던 정신의 깊이에 나를 초대했다. 그리고 그 정신은, 놀랍게도 아주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
아이의 웃음소리, 방금 끓인 국의 냄새, 저녁 노을빛에 물든 창가의 벽지 색깔. 그 모든 것이 갑자기 '의미 있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그전까지는 감정이라는 필터로 왜곡되어 지나쳤던 삶의 단면들이, 이제는 있는 그대로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감정이 잠잠해진다는 건 삶이 멈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삶의 미세한 결을 더 선명하게 듣는 상태라는 것을. 감정의 소란이 잠든 고요 속에서야 비로소 들리는 삶의 첫 번째 소리, 그것은 늘 내 안에 있었고, 다만 내가 너무 시끄러워 듣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 조용한 소리를 따라 살아가기로 한다. 그것이 내가 잊고 살았던 살아 있는 정신의 첫 목소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