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의 의미

비가시적 회복과 무의식적 균형의 날들

by 석은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무언가 일어나야만 살아 있는 하루'라고 믿는다. 변화가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하며, 누군가에게는 성취나 감정의 진폭이 하루를 살아 있는 시간으로 바꿔주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정신은 반드시 격렬한 장면 속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을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그날들은 회복 중인 정신에게 꼭 필요한 여백이었고, 파동 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리듬 속에서 내면의 흐름을 재정비하는 비가시적 복원의 시간이었다.


전작 《심연과 리듬》이 감정의 파동을 관찰하고 구조화해나가는 내면 탐색의 기록이었다면, 지금 이 여정은 '감정이 소진된 이후의 구조'를 살아내는 기록이다. 감정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고, 사건은 더 이상 문제 해결의 중심이 아니다. 구조와 반복, 그리고 무의식의 작동이 서서히 드러나는 이 시점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표면적으로는 무풍지대지만, 심층적으로는 정신이 다음 장면으로 전환을 준비하는 정신적 휴지기다.


상담 장면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간을 자주 목격한다. 내담자가 더 이상 격렬한 감정 반응을 하지 않고, 해석도 줄어들고, 이야기의 밀도마저 낮아진 시기. 그러나 상담자는 안다. 그 시기가 오히려 통합이 일어나기 직전의 고요라는 것을. 그것은 말이 줄고 감정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정신이 스스로를 정렬하고 있다는 징후다. 실제로 통찰은 감정의 극단이 아니라, 무표정한 평면을 통과한 후에 더 또렷해진다.


나의 일상도 그랬다. 무언가를 잃은 것도, 특별히 얻은 것도 없는 날. 가족과 짧은 대화를 나누고, 반복되는 일들을 해내고, 아이와 웃고, 잠드는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하루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날들 덕분에 내가 누구인지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정체성은 격변이 아닌, 지속의 축적 속에서 형성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자주 자문한다. “오늘은 어떤 변화도 없었지만, 나는 나로 살았는가?” 그 질문은 내가 나를 외부의 평가나 사건으로 입증하지 않고, 내부의 진동과 리듬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시도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뉴스도, SNS도, 일기장도 대부분 '일어난 일'에 주목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정신은 말한다. “일어나지 않은 것 속에도 의미가 있다”고. 그것은 어떤 가능성도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지켜진 정신의 평형 상태다.


나는 이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을 사랑한다. 그날은 내가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날이고, 새로운 감정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정리의 시간이며, 다시 생각하고 다시 연결되고 다시 살아나기 위한 숨 고르기의 공간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반드시 드러나는 방식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말하지 않는 순간에 존재했고, 반응하지 않는 시간에도 살아 있었으며, 감정이 잦아든 자리에서도 나로 남아 있었다.


그 조용한 하루가 내게 말했다. “지금도 충분히 살아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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