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사라진 이후

해석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자아의 회복

by 석은별

감정의 파동, 고요의 진동, 정지된 일상과 비가시적 회복의 흐름을 지나며 나는 문득 어떤 욕망 하나가 나에게서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


그 욕망은 오랫동안 내 삶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해받을까 봐 불안했고, 설명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며, 나의 감정과 사유가 누군가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는가'에 집착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것은 단지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타당성을 외부로부터 승인받으려는 존재 욕구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을 통과한 지금, 나는 그 욕망의 흔적이 내 안에서 사그라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해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처음에는 포기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새로운 자율감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타인의 해석이 아닌, 내면의 리듬이 나를 해석하고 있다는 신뢰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우리가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기에 너무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갈망은 때로는 나를 왜곡하게 만들고, 내가 아닌 방식으로 나를 설명하게 한다. 나는 한동안 그런 방식으로 나를 입증하려 애써왔던 것 같다. 단어를 고르고, 표정을 조절하고, 심지어 감정의 강도까지 조절하며 '적절한 나'를 연출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감정이 잠잠해진 이후, 이해받지 않아도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비해석적 존재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표현되지 않아도 존재하고, 전달되지 않아도 살아 있는 자아다.


상담자로서 나는 수많은 내담자들이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중심에 두고 고통을 겪는 것을 목격해왔다. 그 고통은 외부의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해석 욕망과 의미 강박 때문인 경우가 많다. 모든 감정은 설명되어야 하고, 모든 관계는 해석 가능해야 하며, 모든 상처는 납득되어야 한다는 믿음. 하지만 삶은 때로 납득되지 않는 채로 지나간다. 그리고 그 미해석성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자율을 배운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건, 내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 뜻이다. 타인이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듣고 있으니까. 내 안의 여러 목소리들—두려움, 안도, 회복, 희망—이 서로를 듣고 반응하기 시작한 지금, 나는 외부의 인정 없이도 통합된 리듬을 살고 있다.


1부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나는 조용히 정리한다.

감정은 지나갔고, 의식은 깨어났으며,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나를 입증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나로서 살아 있는 정신 그 자체다.


고요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고,

무반응은 무력함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자각이었다.


이제 2부로 넘어가려 한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지금 이 생각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생각은, 나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그 질문들을 안고, 다음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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