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통과한 자리에서 깨어나는 정신의 구조

자동저 사고를 멈추고 의식의 리듬을 조율하다

by 석은별

감정의 파도는 이제 잦아들었다. 파동은 고요로 바뀌었고, 고요는 정적을 지나 자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이 고요의 저편에서 생각하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2부의 여정은 바로 이 '생각하는 나'—즉,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색하는 시간이다. 감정이 밀려나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사고를 감지할 수 있다. 생각은 감정보다 빠르게 도달하지만, 그만큼 인식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 생각이 내가 선택한 것인지, 구조가 만들어낸 것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내 생각이 곧 나라고 믿어왔다. 슬프면 '나는 슬퍼', 화나면 '나는 화났어', 서운하면 '이 관계는 잘못됐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감정이 사라진 이후, 생각은 새로운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감정의 언어를 입은 해석이 아니라, 그 감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의 존재를 달리 조율하는 의식의 구조물이었다.


정신의 구조는 늘 작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 우리는 생각 속에 잠겨 있지만, 그것을 '자각'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생각은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익숙한 문장, 반복되는 자기 판단, 자동화된 사고 흐름—이 모든 것이 배경음처럼 깔려 있어 정작 우리는 그 구조를 '고르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감정을 통과한 자리에 서면, 그 배경음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왜 항상 이런 상황에서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가. 왜 그는 날 비난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비난받는 기분이 드는가. 왜 어떤 말에는 그토록 오래 머무르고, 어떤 감정은 곧바로 잊어버리는가. 이 질문들은 사고의 구조를 드러내는 도구이자, 정신을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상담 장면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내담자는 감정의 해소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뒤, 반복되는 생각의 패턴을 말하기 시작한다.

"저는 항상 제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그냥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요."

"결국 나는 혼자라는 결론으로 돌아가요."

이 문장들은 감정에서 비롯된 듯하지만, 실은 사고의 구조물이자 해석의 기계다. 그리고 그 기계는 대개 자동으로 작동한다.


의식이 깨어난다는 것은, 바로 그 자동화된 해석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정신의 구조를 자각하는 초입에 서게 된다. 생각은 단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고 조정될 수 있는 리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이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단순한 두뇌 활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정신의 핵심 기술임을 실감한다. 그것은 선택 가능한 리듬이며, 구성 가능한 서사이며, 변형 가능한 태도다. 그리고 그 기술은 감정을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다루어질 수 있다.


이제 나는 나의 사고를 듣는다. 그 소리는 조용하고 빠르며, 때로는 내 감정보다 앞서서 결론을 내린다. 나는 그 소리를 무비판적으로 따르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소리를 함께 걷는 동료로 삼기로 했다.


감정을 통과한 자리에 깨어나는 정신.

그것은 내 삶을 선택 가능한 것으로 바꿔주는 첫 문장이자, 새로운 자율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 문장은 이렇게 속삭인다:

“지금 이 생각, 정말 너의 것이 맞니?”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6화이해받고 싶은 욕망이 사라진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