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중심에서 벗어나 존재 중심으로 나아가기
상담자로 살아온 나는, 오랫동안 '문제를 푸는 사람'이었다. 내담자가 고통을 토로하면 원인을 분석했고, 감정을 따라가며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았으며, 결국 어떤 '해결지점'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여겼다. 문제를 잘 정리하고, 명확하게 해석하고,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것이 전문성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지, 나는 상담실 안에서 반복되는 한 장면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어떤 내담자는 충분히 통찰했고, 문제를 잘 설명했고, 행동 지침까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더 이상 분석되지 않았고, 새로운 정보는 아무런 파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그날 상담이 끝난 후 오래도록 한 문장을 되뇌었다.
“문제를 다 알았는데, 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가?”
그 질문은 나의 상담 방식을, 더 나아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문득, 내 삶에서도 비슷한 회로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와의 반복된 갈등, 부부관계에서의 반복된 냉전, 글쓰기 앞에서의 망설임—이 모든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문제를 푸는 사람'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은 문제의 해석이 아니라, 그 문제를 중심에 두는 내 삶의 태도였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문제를 놓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내가 할 일을 부여해준다. 나를 쓸모 있게 만들고, 집중하게 하고, 회피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 정신을 '해결 중심의 고정 틀' 안에 가두고 있었다.
구조 인식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나는 이 틀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문제로 보이는 현상 대부분은 사실 반복되는 패턴의 표면적 사건이었다. 감정이 과잉되는 특정 장면, 관계에서 항상 같은 포지션을 취하는 나, 그리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생각.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인식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나는 실제로 한 내담자와의 깊은 세션을 통해 이를 재확인하게 되었다. 그는 1년 넘게 관계 회피 문제를 가지고 고민해왔다. 수많은 사건을 분석했고, 가족 배경을 들여다보았으며, 현재의 감정 상태도 충분히 나눴다. 그러나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저, 문제를 안 풀면 안 될까요?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요?”
그 말은 마치 내게 하는 질문 같았다. 나는 내면에서 정지되었다. 그리고 느꼈다. 지금 변화가 일어났다고. 그는 비로소 '문제에서 나와 자기에게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상담의 패러다임을 조금씩 전환했다. 문제 중심이 아니라, 존재 중심으로. 무엇을 고칠까보다,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를 묻기 시작했다. 원인을 찾는 대신, 지금 여기를 살아보는 선택을 제안했다.
이 변화는 내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는 더 이상 모든 상황에서 의미를 분석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 이 장면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가?”
문제를 푸는 사람에서, 존재를 살아내는 사람으로.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전환이다. 더 이상 모든 것은 해석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감정은 설명되지 않아도 되며, 모든 구조는 극복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문제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 중심이 아닌 존재 중심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삶의 중심에 놓는다:
“지금 여기, 나는 문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