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은 반드시 무의식적이다

익숙함이 아닌 무의식이 만드는 삶의 패턴

by 석은별

문제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전환한 이후, 나는 다시금 나의 일상 패턴을 면밀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보이기 시작했다. 반복. 무수한 반복.

같은 시간에 피곤해지고, 같은 상황에서 오해하고, 같은 문장으로 상처받고, 결국 같은 결론으로 회피한다. 이전에는 이 반복을 단지 '성격'이나 '습관'으로 치부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이 반복은 익숙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 명령하는 구조적 작동이었다.


무의식은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시 말해, 나는 과거의 사건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낳은 ‘내면의 틀’을 반복하고 있었다.


상담실에서도 이 반복은 자주 나타난다. 수년째 동일한 관계에서 상처받는 내담자, 직장을 옮겨도 반복되는 위계 갈등, 애정을 원하면서도 친밀함을 회피하는 모순된 행동. 처음엔 이런 패턴을 개인의 성향이나 외부 요인으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반복은 설명보다 패턴 자체의 자각을 요구했다.


한 내담자의 사례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녀는 늘 "결국 나는 혼자야"라는 말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관계에서의 불안, 반복된 이별, 지나친 의심—이 모든 감정과 생각은 그 말로 회귀했다. 처음엔 이 문장이 진실처럼 느껴졌지만, 몇 회기를 지나며 나는 질문을 던졌다.

“그 생각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녀는 멈칫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요. 엄마가 없을 때 처음 그 생각을 했어요.”

그 문장을 들은 순간, 나는 알았다. 지금 그녀의 관계는 과거 사건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서 형성된 무의식적 구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반복을 사건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나 역시 그랬다. 특정한 날에 반복적으로 의욕이 떨어지는 이유, 같은 감정 단어에 유난히 예민해지는 이유,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갑자기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 이 모든 것은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과거가 만든 틀의 작동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질문이 바뀌었다.


이것은 왜 일어나는가 → 이것은 어떤 구조로 반복되는가?


반복은 자각 없이는 멈추지 않는다. 반성이나 인내로도 멈추지 않는다. 반복은 무의식의 언어다. 무의식은 말을 하지 않지만, 반복이라는 방식으로 ‘지금 여기’를 침범한다. 그리고 그 침범은 대개 ‘익숙함’이라는 탈을 쓰고 다가온다. 우리는 “또 이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을 탓하지만, 정작 그 반복을 만들어낸 구조에는 질문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감정은 처음이지만, 이 구조는 익숙하지 않은가?”

“이 선택은 새로워 보이지만, 결말은 매번 같지 않은가?”


이 질문은 나를 나 자신과 다시 만나게 한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비로소 반복이 멈추기 시작한다. 아니,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반복되기 시작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더 의식적인 방식으로, 내 의지와 연결된 반복으로.


반복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반복은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무의식이 말 걸고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우리가 귀 기울인다면, 반복은 더 이상 덫이 아니라 자기 이해로 가는 가장 구체적인 경로가 된다.

“나는 지금, 익숙함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무의식을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이 나를 다시 구조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을 반복한다. 반복 속에서, 나는 다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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