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만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는 방법

이해의 한계에서 행동의 지점으로 이동하기

by 석은별

우리는 너무 자주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 아는데...”, “그 사람은 그런 의도가 아니란 걸 알아...”, “지금 이 감정은 과거에서 온 거란 걸 인식해...”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반응을 하고, 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걸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나를 붙잡았다. 특히 상담자로서 내담자와 마주하면서, 나는 이 패턴을 셀 수 없이 보았다. 통찰을 갖춘 사람일수록, 자신을 더 날카롭게 비판한다. '나는 왜 또 이럴까', '알면서 왜 이러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건 '몰라서'가 아니라, '아무리 알아도 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담자 B는 늘 자책과 반성 속에 머무는 사람이었다. 지적인 통찰은 훌륭했다.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분석도 치밀했다. 그런데도 그는 매번 같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지금 가장 괴로운 건 무엇인가요?”

그는 대답했다. “알면서 못 바꾸는 나예요.”

나는 그에게 '기억 너머의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뇌의 생각보다 오래된 몸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몸은 과거의 생존 방식, 정서적 기억, 무의식의 회로로 작동한다. 인식은 표면을 건드릴 수 있어도, 몸과 감정이 오래 배운 반응은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알면서 안 되는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내 무의식적 리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저는 지금, 저를 천천히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요.”

이 문장이 그에게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는 ‘왜 안 되지’에서 ‘어떻게 배우고 있지’로 관점을 전환했고, 그때부터 ‘실패’가 아니라 ‘진행 중’이라는 정체성을 만들 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오랫동안 ‘안다는 건 곧 실천한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상담자로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또 나 자신의 회복 과정을 겪으며 이 진술은 조심스럽게 수정되었다. 지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안다는 것은, 살아내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알지만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는 건, 자기 자신에게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다. 어떤 반응은 단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생존 방식의 흔적이다. 우리는 그 흔적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리듬을 덧그려야 한다.

반복은 반드시 무의식적이다. 그리고 무의식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나에게 말한다.

“또 그랬구나. 괜찮아. 다음에도 그럴 수 있어. 그런데 이번엔, 조금만 다르게 해볼까?”


그 다름이, 나를 조금씩 바꿔간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배우는 중이다.

“알지만 하지 않는” 나를 이해한다는 건,

나를 미워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다시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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