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고 나니 전화 한 통 없다

Part 7. 퇴직 후 60대 남성

by 석은별

인물 소개와 에피소드 배경


이름: 정호(가명) / 64세 / 전직 대기업 관리자


정호는 대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2년 전 명예퇴직했다. 처음엔 “이제 내 시간을 살아보자”며 여행도 다니고, 오래된 친구들과 모임도 자주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락은 줄었고, 가족과의 대화도 점점 짧아졌다. 어느 날 달력을 보던 중, 며칠째 아무런 약속이나 연락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묘한 허전함이 가슴을 채웠다.


이유 없이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난 저녁, 그는 문득 일기를 꺼냈다.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1. 어떤 일이 있었나요?

아침밥을 먹고 거실에 앉았다. TV를 켰지만 집중은 안 되고, 화면만 멍하니 바라봤다. 채널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책을 펼쳤다가 덮고, 커피를 내리다 말고 주방 창문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오늘 하루, 전화 한 통, 문자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을.


2. 기록 전 주요 감정 백분율

무기력 30%

고립감 25%

공허함 20%

쓸쓸함 15%

초조함 10%


3.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요?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퇴직 전엔 회의, 점심 약속, 업무 보고 등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젠 울리면 보험 전화다.

오히려 진짜 지인이 연락하는 게 낯설게 느껴진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나는 그냥 집 안 구석에 앉아 있는, 아무 일 없는 사람이다.
아무도 찾지 않고, 나도 찾을 일이 없는 사람.


4. 활용한 기법은 무엇인가요?

감정 명명: ‘무기력’, ‘고립감’, ‘쓸쓸함’이라는 감정을 언어로 붙잡기

감정-사건 연결하기: 외부 자극이 없는 하루를 감정 변화와 연결

자기 인식 문장 생성: “나는 지금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사람처럼 느낀다”는 자각 문장 생성


5. 새로운 생각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느끼는 건 단순히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존재의 이유를 외부 역할에서 찾다 보니, 그 역할이 사라지자 나 자신도 사라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내가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존재 이유를 돌려야 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이 조용함 속에서 나는 다시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6. 도움이 된 점은 무엇인가요?

감정을 기록하니 허전함이 조금 덜해졌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그냥 넘기지 않고 글로 붙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존재가 조금은 실체를 가진 느낌이다. 전화 한 통 없는 하루에도 나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바로 나였다.


7.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을까요?

“전화가 없어도 괜찮아. 네가 널 부르면 돼.”

“이 조용한 하루도 너의 일부야.”

“네가 오늘 하루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8. 기록 후 주요 감정 백분율

여운감 30%

약간의 위안 25%

자기연민 20%

고요함 15%

무기력 10%


9. 일기 쓰기 전과 후의 변화

기록 전에는 ‘나는 아무에게도 필요 없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외로움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 내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누구에게도 불리지 않는 하루를 지나며, 나는 처음으로 ‘내가 나를 부르는 연습’을 시작했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하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25화작은 소리에도 눈물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