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을 좋은 곳에 들어갔지만 2년도 채 못 버티고 나왔다.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갈구는 선임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내가 있던 부서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사람이 나라고 한다. 퇴사하면서 조용히 혼자만 감당하고 나온 것이 아니기에 큰 후회는 없다. 요즘은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20여 년 전에는 억울하면 나가는 게 살길이었다.
이후 결혼 전까지 2년간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 여러 곳에 전전하다 이전 직장만 한 곳을 못 들어가니 노선을 틀었다. 카드회사에서 채권추심 일을 한 것이다. 주로 전화로 연체자들에게 전화해서 돈을 갚으라는 안내를 했고,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대환대출을 유도해서 실적을 채웠다.
친한 언니의 소개로 들어갔던 회사였는데 내 또래 여자들이 많았다. 그 당시 일반 회사라면 100만 원 전후의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면 채권추심일은 기본 200만 원부터 시작해서 잘하는 사람은 5~600만 원도 벌었다. IMF 이후 경제 상황이 좋지 않게 되면서 부실채권도 많았고 그 틈에 일하던 나는 말하는 것과 설득력이 좋다는 평을 종종 받으며 실적에서는 늘 탑을 유지했다. 3개월 연속으로 실적 탑이 되면 반장이라는 칭호까지 붙여주는 곳이었다.
카드회사에서 만난 친구들 대부분은 여성 가장이었다. 간혹 유흥비를 벌 목적이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이유로 뜨내기들도 많이 왔지만 몇 년씩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 가장이 많았다. 시골집에 돈을 보내야 되는 장녀부터 이혼으로 가장이 된 엄마, 아픈 형제를 돌봐야 하는 동생, 공부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 채권 추심 대신 '금융업'에 종사한다고 다니는 사회 초년생들부터 다양하게 있었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신세한탄하며 친해지는 멤버들은 퇴근 후 술집에서 뒷이야기를 이어갔고, 20대가 대부분인 그들은 누구도 평생직장을 삼으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각자 이곳을 떠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꿈을 꾸었다. 채권추심이라는 일이 돈은 많이 벌지만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각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학을 앞둔 법대생 언니는 언젠가 이 일을 한 것을 지우겠다고 한다.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지만, 고시를 붙고 나서 이 직업을 떠올리면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언니는 '이 일이 어때서? 우리가 연체자들 찾아다니면서 괴롭힌 건 아니잖아. 그 사람들도 사정이 있긴 하지만 돈을 쓰고 안 갚은 건 그 사람들 잘못도 있는데 왜 그래?'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양심이 불편한 직업인 것이다.
악의로 연체를 하는 사람들보다 경제위기로 연체가 된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떤 경우에는 숨 막히는 사연을 듣다 보면 전화를 더 이상 안 하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길이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콜 수를 맞춰야 되니 부재중이라도 남겨야 되는 시늉을 내야 돼서 전화번호만 뜨면 고통스러워하는 상대방을 배려하기보다는 내 실적을 위해 전화를 걸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돈을 잘 번다는 소문에 들어왔던 사람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는 곳이기도 했다. 어느 누가 잡지도 않는다. 어차피 새로 들어올 신입들은 매달 줄 서 있는 게 현실이었다.
팀 내에 실적이 좋은 사람이 있으면 팀장을 달아 준다거나 신입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주는 교육의 기회도 만들어준다. 기본적인 서비스 마인드에서부터 돈을 잘 받을 수 있는 은밀한 방법도 공유해서 팀의 실적을 높여 개인별, 팀별 경쟁한다. 회사에서는 어떻게든 실적이 나오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 추심과 관련된 법적인 일도 불사했고, 당시 법적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 참여 한 이후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물론 사무실에서 콜만 할 때는 퇴사를 고민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전화기 너머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고달픔에 마음이 불편했다면, 막상 법적절차를 전담하는 일로 바뀌면서 '이런 곳까지 굳이...'라는 생각에 하루빨리 그만두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을 떠올리는 이유 중 하나는 얼마 전 경제사정이 좋지 않게 되어 보름 정도 카드를 연체할 일이 생겼다. 미리 결제일을 변경했다면 괜찮았는데, 그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연체를 했다. 보름간 같은 번호로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는가 하면 보름 만에 법적 절차를 운운하는 메시지를 보면서 과거의 내가 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나의 일이 누군가에게는 숨통을 조으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임을 경험했다. 일하면서도 불편했지만, 막상 입장이 달라져 보니 그 법대생 언니의 다짐이 떠올랐다. 정말 지워 버리고 싶은 직업의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