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은별 Feb 22. 2024

그건 너의 감정이고

타인의 갈등으로 힘든 사람

어린아이들에게 부모의 갈등은 외적 세계를 불바다로 만드는 것은 물론 내적 세계도 대지진이 일어난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어린시절 불화를 많이 경험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

어쩌면 나도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대지진을 수습하며 살아내고 있는게 어른이 되어 겪는 성장통이겠지.


갈등에 취약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게 '속 시끄러운 거 딱 질색이다!'라며 자신도 타인과 갈등을 겪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갈등에도 과민하게 받아들여 마치 자신의 일처럼 뛰어들어 해결하려 들거나 갈등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저 멀리 도망가 버리거나 둘 중에 하나의 양상을 나타낸다.


친한 친구들 무리에서 두 사람이 갈등을 겪었다.

한 명은 친구 하나하나 붙잡으면서 하소연한다. 상대방의 발뒤꿈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양 있는 흉 없는 흉 다 잡아내서 하소연한다. 친구들이 듣다가 지쳐 다른 한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한다.


"야! 제발 좀 풀어라 풀어!"


"뭘 풀어?"


"아니. 너 A랑 얼마 전에 다퉜잖아. 도대체 너희 둘이 왜 그러는데?"


"걔랑 말이 안 통해. 그래서 말 안 하고 있는데 왜?"


"그러니까! 왜 말을 안 하냐고?"


"내가 걔랑 말을 안 하는 게 너하고 무슨 상관?"


"네가 말을 안 하니까 내가 괴로워 죽겠다. 괴로워 죽겠어!"


"아니 내가 걔랑 말이 안 통해서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괴롭냐고. 내가 뭐라 했어?"


"둘 다 정말 이럴래? 중간에 끼여 있는 사람 힘들잖아!"


"아니. 중간에 네가 왜 끼어있냐고. 난 너를 중간에 끼운 적이 없는데?"


"맨날 A가 힘들다 하잖아."


"힘드니까 힘들다 하겠지."


"네가 걔랑 화해해! 그럼 내가 안 힘들지."


"아니. 내가 왜 걔랑 화해해야 하느냐고. 걔하고 대화하려고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안 통해. 그냥 난 이대로가 좋아."


"내가 들들 볶여서 못 살겠다. 정말. 둘이 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하하 이제야 알겠다. 야! 그건 니 감정이야. 니 감정은 네가 해결해. 내가 왜 니 불편한 감정까지 해결해야 되냐고. 네가 A한테 더 이상 못 듣겠다고 해. 그럼 될 것을 왜 나한테 걔하고 화해하라 마라야?"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그 갈등으로 파투가 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갈등이 있어도 모임이 존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갈등이 일어난 사람들이 소수라면 그들끼리 해결하면 된다. 간혹 갈등으로 인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많아진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런 반응도 안 하고 있는 사람이 가해자가 되어야 한다. 마치 갈등을 끌고 가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잘 살펴보면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자주 싸우는 집에서 아빠는 버럭하고 아침에 회사 나가버리고, 엄마는 하루종일 아이들 붙잡고 아빠한테서 당한 것을 하소연하면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과 똑같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엄마 편이 되어야 하고 엄마와 아빠의 둘 사이 일에 아이들이 판사처럼 중재하려고 든다. 엄밀히 말해 엄마와 아빠의 일은 엄마와 아빠가 풀어야 되는데, 아빠에게 정당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엄마가 약한 아이들을 붙잡고 아빠를 욕하는 것과 같다. 아빠가 풀어 주면 좋은데 막상 엄마는 아빠에게는 또 그만큼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니 아빠 입장에서는 화를 풀어 줄 게 없다고 느낀다.


타인의 갈등에서 괴롭다면 누가 뭘 잘못했고 뭘 더 잘했는지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 둘이 갈등이 일어나서 저러고 있구나 하면 된다. 그러나 마음속 세상은 마치 하늘과 땅 같았던 엄마와 아빠의 싸움을 재연하듯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 시절에나 경험하던 것이지, 다 큰 이후에 경험하는 세상은 부모의 갈등 상황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구분 지어내지 못하면 친구들 싸움에 직장 동료들 싸움에 괜히 본인만 중간입장이 돼서 남의 하소연에 듣기 싫다는 말도 못 하고, 그 반대에 있는 사람에게는 판사처럼 나타나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기 십상이다.


혹 타인의 갈등에서 마음이 힘들다면, 그것은 타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싫다면 두 사람으로부터 분리해서 자신의 평화를 찾으면 된다.

이전 11화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