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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정 Mar 12. 2018

인하우스 패러독스

광고가 광고답지 못한 이유

인하우스 에이전시(in-house agency)란 광고 대리점 가운데 특정 광고주의 자본 하에 있는 것으로 그 기업의 경영지배를 받는 일종의 전속 광고 대리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 산하에 있으면 매체 수수료가 안정되어 있어 경영이 견실함과 아울러 기업 측은 기업 비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점이 있으나 독창적인 활동이 결여될 우려가 있다. 출처 : 매경닷컴


나쁜 광고 전성시대
광고계의 서태지에 비견되는 TTL

대한민국 광고의 전성시대는 언제였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1999년 SK텔레콤의 TTL 광고 전후를 꼽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티저 광고라고 기록된 TTL CF는 본격적인 통신업계 광고 전쟁의 신호탄이라고 평가받는다. 당시 모델이었던 임은경은 최고의 스타로 급부상했고, 약 100만 명의 이용자 이동 현상을 만들기도 했다.


전통적인 광고론의 입장에서 보면 TTL 광고는 나쁜(?) 광고다. 제품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영상은 설명이 필요할 정도로 어렵다. 하지만 19세~24세 사이의 젊은 층들은 열광했다. 애초 뜻이 없었던 TTL에 The Twentieth Love, Time To Love 등의 의미를 부여하며, TTL을 자신들을 상징하는 문화 브랜드로 받아들였다.


처음 만나는 자유,
스무 살의 011, TTL
Made in 20


나쁜 광고는 독창적인 광고의 다른 말이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 광고는 크리에이티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1987년 미국의 통상압력에 의해 시작된 광고 자유화 조치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에 외국인 투자 100%를 허용했고, 1995년에는 광고영화 제작 부분까지 투자를 완전히 개방했다.


다양성은 경쟁을 만들고, 경쟁은 충돌하며 창의성을 낳는다. 1995년 이후 한국에 새롭게 진출한 제이월터톰슨, TBWA 코리아, BSBW 등과 기존에 진출했던 퍼블리시스, 하바스, 보젤과 옴니콤, 더블유피피, 덴츠와 하쿠호도 등 세계 10대 광고회사들이 이 시기 모두 한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짧았던 한국 광고의 르네상스였다.


추락하는 광고는 경쟁이 없다
광고주와 대행사의 경쟁이 좋은 광고를 만든다.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든다. 인하우스 시스템은 대행사가 광고주의 경영지배를 받는 형태다. 광고주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구조는 광고주 스스로가 만들었다. 1995년 광고시장이 개방된 후 10년간 국내 광고시장의 경쟁은 치열했다.


1998년 7.6%에 불과했던 다국적 광고대행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2006년 34.3%까지 크게 성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시장 확대는 여기까지였다. 굵직한 광고주였던 현대와 SK, 그리고 LG그룹 등이 인하우스 에이전시 시스템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 광고시장은 광고주와 광고대행사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인하우스 시스템으로 고착된다. 재벌이 광고주고, 광고대행사의 오너가 되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구조가 탄생한다.



2004년 LG그룹은 HS애드를 설립했고, 2005년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노션을, 2008년 SK그룹은 SK M&C라는 광고대행사를 설립해서 광고물량을 전폭적으로 몰아준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대 광고주인 삼성그룹의 인하우스 에이전시인 제일기획은 1999년 17.8%의 시장점유율을 2014년 40.3%까지 비약적으로 끌어올린다.


이 시기 대한민국의 독립 광고대행사들은 자취를 감춘다. 경쟁의 뿌리가 제거된 것이다. 인하우스 에이전시의 전성시대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경쟁이 사라지면 기회가 박탈된다. 창의력의 기회가 박탈되자, 광고인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부정한 권력과의 결탁이었다. 바로 차은택으로 상징되는 광고계의 권력비리다.


광고의 블루오션, 대부업과 권력비리?
서민을 위하는 사채회사? 광고는 대량 살상무기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발탄이었던 차은택 사건은 국내를 대표하는 인하우스 에이전시인 제일기획 출신들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의 첫 권력비리는 포스코의 광고대행사였던 포레카 강탈사건이다. 왜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 광고계는 더 이상 창의력으로 경쟁해서는 크게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시기에 국내에서 독립광고회사로 성공하는 일은 힘들었다. 그나마 대부업 광고가 탈출구 역할을 했다. 많은 인하우스 출신들이 규제가 허술한 틈에 급부상한 대부업체 광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다시 규제가 강화되면서 대부업 광고시장도 침체하기 시작했다. 사채광고와 권력비리가 광고계의 모델(?)이 되었다.



10년 전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대부업 광고대행사의 대표를 만난 적이 있다. 그도 제일기획 출신이었다. 처음에는 독립광고대행사를 설립했다고 했다. 하지만 경쟁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을 느끼고, 대부업 광고를 수주했다고 했다. 그리고 결국 대부업체 계열사로 편입되었다. 대부업 광고시장도 인하우스 시스템에 전염되었다.


광고를 광고답게
이런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싶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2018년 2월 20일, 27년 업력의 광고회사 코마코가 최종 부도 처리됐다. 코마코는 1989년 6월에 설립된 종합광고대행사로, 국내를 대표하는 중견 광고회사다. 전통매체 중심의 광고시장이 크게 줄면서 위기설은 줄곧 있었지만, 그나마 내실 있다고 평가받던 코마코였다. 광고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코마코가 부도 처리되기 몇 주 전인 2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광고·홍보 등 PR 업계의 리젝션 피(rejection fee) 도입 요청에 관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리젝션 피란 광고홍보 등의 전문업체 선정 입찰 과정에서 탈락하는 회사에 일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제도다. 50년이나 잠자던 문제가 이제야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 광고는 힘들다. 그나마 큰 물량들은 인하우스 에이전시가 이미 독식했고, 대부업체 광고도 이미 인하우스 시스템이 되어버렸으며, 성장산업이 없으니 신규 물량도 거의 없고, 최근에는 저비용 고효율을 앞세운 디지털 마케팅과의 경쟁에 지쳐버렸다. 건실했던 회사는 부도가 나고, 믿을 만한 선배들은 범죄자가 되어버렸다.


광고의 연금술社
달은 지고 다시 찬다.

대한민국 광고계에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광고의 크리에이티브를 무시하는 광고주가 있었다. 그는 짧은 CF에 많은 메시지를 넣고 싶었다. 비싼 매체 비용을 지급하니까 더 많은 정보를 넣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대행사는 난감했다. 하나의 메시지도 제대로 인식시키기 힘든데...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을 : (준비한 발표 끝) 이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갑 : 잠시만요, 이런 것들도 좀 넣으면 안 돼요?
을 : (뜬금없이) 갑님, 캐치볼 좋아하세요?
갑 : 뭐라고요?
을 : (준비한 공을 던지며) 자 받아보세요~
갑 : (얼떨결에 공을 받는다)
을 : 잘 받으시네요! 이번엔 4개 갑니다~
갑 : (4개 중 하나도 못 받는다)
을 : 이번에는 하나도 못 받으셨네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제대로 된 하나의 컨셉만 넣어야 합니다.
갑 : ....


광고는 광고주와 경쟁해야 광고다워진다. 광고주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다. 그래야 광고주의 자격이 있다. 광고는 견고한 광고주라는 벽을 때로는 넘고, 때로는 녹이고, 때로는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광고의 독창성이 피어난다. 그런데 인하우스 시스템은 이런 과정 자체를 봉인시켰다. 경쟁 없이는 광고의 혁신도 없다.


좋은 광고는 제품의 철학을 바꾼다. 좋은 광고는 회사의 매출을 성장시킨다. 좋은 광고는 좋은 경쟁에서 태어난다.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에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나온다. 연금술로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그것과 동등한 재료가 필요하다는 대원칙이다. 대한민국 광고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연금술의 재료는 과연 무엇일까? 끝.


희생을 뛰어넘었을 때,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강철 같은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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