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present)’라는 선물
#당신_인생의_이야기 #스포일러_주의
드니 빌뇌브 감독은 테드 창의 SF 단편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책과는 다른 제목 <Arrival>을 선택한다. 우리나라에 수입 개봉될 때는 <컨택트>로 또 한 번 제목이 바뀐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 <Arrival>를 거쳐 <컨택트>를 제목으로 결정한 근거는 무엇일까. 여러 제목 중에 가장 합당한 것은 무엇일까.
역순으로 짚어보면, 영화를 수입한 관계자는 기존의 SF 관점대로, 지구인 입장에서 타자인 외계인을 접촉하는 이야기로 해석해서 제목을 <컨택트>로 바꿨다고 예상한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 감독은 정확히 반대로 관점을 바꾼 SF를 만들었다. 보통의 영화가 제목을 초반에 제시하는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모든 이야기가 완성된 후에 제목을 제시한다. 외계인들은 지구라는 행성에 발을 딛고 싶으나 지구인들은 그들을 타자와 적으로 간주한다. 주인공에게는 아직 오지 않은 혼란스러운 미래가 자꾸만 눈앞에 나타난다. 외계인의 관점에서 지구라는 행성에 비로소 도착(환대)하고, 극중 주인공이 다가올 자신의 삶에 비로소 도착(수용)할 것을 암시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 타이밍에 비로소 도착하듯이 제목 ‘Arrival’이 뜬다.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은 <Arrival>이 될 수 밖에 없다. 원작 소설의 한국어판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테드 창의 단편 소설을 읽어보면 소설의 제목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작중 화자의 딸에게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를 향한 이야기이고, 자신의 삶에 비로소 도착하려는 모든 화자들의 이야기라서 소설의 원제는 이렇다.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N차_인생은_없어도 #N차_인생서사는_있다
극장에 들어갈 때까지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다가 한 장면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주인공이 프로포즈를 받는 순간이었다. 주인공에게는 앞으로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다가올 미래를 지나간 과거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어도, 다시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그 프로포즈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도 그 선택을 할 수 있어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기혼자들이 한번쯤은 받아본 질문이다. 다 알았다면 이 선택을 했을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진 건, 그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가 마치 알기만 하고 만지지 못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삶을 선택할 것인가. 그 질문을 틀렸다.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도착하고 비로소 시작하는 삶일테니. 만지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들을 제대로 만지고 느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다시 제대로 감각할 수 있다면, 이 삶을 다시 선택할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생은 다음 생에서. 이런 생은 이번 생에서 얼마든지 품고 누리고 싶다.
#페르마 #최단_시간의_원리
영화에는 빠졌지만 소설 속에는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가 등장한다. 빛은 언제나 최소시간으로 도달하는 경로를 선택한다는 원리로, 빛이 최단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출발선에서 도착할 지점을 미리 정하고 그 사이 변수들마저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에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작가 테드 창은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를 통해 삶의 여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인과의 서사를 벗어나 어떻게 삶에 뿌리 내리고 도착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빛은 도착할 곳을 정확히 알고 출발한다고 한다.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이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며, 인생은 나만의 고유한 서사가 될 수 있다.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글쓰기도 그와 같다. 한 편의 글(이야기)을 써서 전하고 싶은 주제가 명확하다면, 스토리텔링 구성으로 경로를 설정하고 가장 적확하게 최종 마침표에 도착할 수 있다. 작가는 시작(사건)과 끝(변화)를 정해놓고, 결정적 사건을 통해 주인공의 인생을 바꾸는 변화에 이르기까지 가장 적확한 경로를 설계하는 일을 한다. <인생 서사에 도착하는 글쓰기> 12주 여정이 가야할 곳은 바로 그곳이다. 삶을 재구성해서 스토리텔링을 거쳐 한 편의 글로 완성하는 여정 끝에 자신이 원하는 현재(지금, 여기)에 비로소 도착하기.
#present #현재라는_선물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은 언어학자이다. 그녀는 외계인의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골몰한다. 외계인과 접촉하고 소통해서 처음으로 알아낸 단어가 바로 ‘present’이다. 외계인들이 미래로부터 와서 전해 주려던 것은 ‘현재(present)’라는 ‘선물(present)’이었다. 주인공은 다가올 미래가 진작부터 거기서 기다리는 현재라는 것을 깨닫고, 선물을 만나러 가기로 선택한다. 그녀는 행복은 짧고 불행은 긴 결혼 생활을 기꺼이 선택한다. 아는 것과 만나는 것은 다르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내가 직접 그 이야기를 살아간다는 것은 다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인생의 시작과 끝을 알지만 우리는 제각기 다른 삶의 서사를 매순간 만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선물처럼 품고 살아가자’는 주제를 담기 위해 한 편의 시를 쓸 수도 있고 에세이를 쓸 수도 있다. 테드 창과 같이 소설을 써도 좋다. 드니 빌뇌브와 같이 영화를 만들어도 좋다. 어떤 장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스토리텔링은 달라진다. 테드 창은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작중 화자가 미래의 딸에게 자신이 먼저 본 모녀 서사를 이야기 들려주는 방식을 택했다. 다가올 장면들을 구술한다고 해서 미래 시제 어미를 쓰지 않고 현재형 어미를 썼다. 드니 빌뇌브는 제목을 ‘Arrival’로 정해 놓고, 외계인이 타고 있는 정체불명의 구체가 지구 대기권에 도착하는 장면을 영화 오프닝으로 배치했다. 스토리텔링 구성을 알면, 왜 그 문장으로 소설을 시작해야 했는지, 왜 그 장면으로 영화를 열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주인공 직업이 언어학자이고, 미래의 남편이자 현재 같은 목표(외계인이 지구에 온 이유 알아내기)를 위해 협업하는 과학자로 설정된 이유도 알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나라는 주인공과 내 삶도 분석하고 해석하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다.
#Orientation #오리엔테이션
오리엔테이션의 의미를 찾아보니, 마치 ‘인생 서사에 도착하는 글쓰기 워크샵’ 오리엔테이션을 위한 사전 같다. 1. 내 삶이 도착하고자 하는 목표에 맞는 방향과 지향을 찾아가는 글쓰기 2.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알아가고 내 곁의 타인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글쓰기 3. 인생 서사를 쓰면서 새롭게 살아가기 위한 예비 교육으로서의 글쓰기
삶을 이해하는 관점이자, 삶이라는 행성에 도착하는 도구 ‘스토리텔링’의 이론과 실제를 12주차 온라인 워크샵 형식으로 연재한다. 내 인생 서사를 스토리텔링 구성법에 맞춰 정리해 보고 싶은 분들, 글은 시작은 하지만 끝을 못 내서 고민인 분들, 글을 쓸 때 구성적 관점에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분들, 스토리텔링 관점에서 자기계발에 도움을 받고 싶은 분들은 12주 여정을 함께 하며 구성의 9단계에 맞는 글쓰기를 매주 해보기를 권한다. 구성의 9단계별 짧은 글을 써서 스토리텔링 구성에 맞게 배치하면 한편의 긴 글이 완성될 것이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삶의 좌표에 조금 더 가깝게 도착할 것이다.
<인생 서사에 도착하는 글쓰기 워크샵> 안내
1회차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2회차 글쓰기 이론과 도구를 익힌 뒤에 구성의 9단계에 맞춘 글쓰기 실전으로 들어갑니다. 스토리텔링 구성 단계에 해당하는 글을 써나가면 마지막 12회차에 인생 서사가 담긴 한편의 긴 글이 완성될 것입니다.
실제 워크샵에 참여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구성 단계에 해당하는 기억을 길어올려, 매주 짧은 글이라도 써보시길 권해요.
구독=워크샵 등록
라이킷=출첵
댓글=소감과 질문
미지의 존재들이 글쓰기를 통해 서로에게 도착하는 순간을 그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