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발굴 24주년 since1997
시간은 무심히 흐르는 듯싶지만 과거 현재 미래는 정교하게 맞물려있습니다. 역사를 오래된 미래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강남권’이지만 ‘강남스럽지 않은’ 고즈넉한 주택가가 서울 송파구 풍납동입니다. 이곳의 매력은 ‘알아야’ 보이고 ‘아는 만큼’ 느끼게 됩니다.
동네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풍납토성, 그리고 땅 아래 묻혀있는 2천년 전 백제가 잠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고대사로 떠나는 타임머신’, ‘한국의 폼페이’란 별칭이 붙었습니다. 보석이지만 아직은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원석이라고 할까요.
풍납동이 2019년 서울형 도시재생사업 후보지로 선정되면서 백제의 문화와 유산을 되살리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기대가 많이 됩니다.
해박한 역사 지식과 우리 문화재에 무한 애정을 갖고 있는 프로 가이드를 모시고 풍납동 투어를 진행했고 우리 역사를 남다르게 접근하는 분들을 만나봤습니다. 송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담아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다채로운 관점과 능동적인 아이디어, 동네 사람들의 지지가 모아질수록 풍납동의 역사문화는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겠지요.
도심 주택가 한복판에 잠들어 있는 2000년 전 역사
온조가 세운 백제의 첫 시작은 한강변에 위치한 풍납동 일대로 백제 한성기 493년(BC18년~ AD 475년) 동안 도읍지였습니다. 그 이후 공주에서 63년, 부여에서 122년 동안 백제가 이어졌지요. 한강변에 터를 잡았던 때가 백제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도읍지였으며 번성기를 누렸습니다.
송파구에는 현재 풍납토성을 비롯해 몽촌토성, 석촌동고분군, 방이동 고분군 등 백제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이 가운데 백제 왕성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일대는 지하 6m만 파고 들어가면 2천 년 전 백제문화권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이는 고고학의 보물창고입니다.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타임캡술, 풍납토성
올림픽대교~천호대교 사이 타원형으로 위치해 있는 풍납토성은 전체 넓이가 353,589㎡ 둘레가 4km, 높이가 최대 15m에 달했던 토성입니다. 현존하는 국내 토성 중 최대 규모이지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남서쪽 일부가 유실되고 서울 개발 과정에서 훼손되어 2.7km 정도만 남았지만 재조성 사업을 거쳐 현재 토성의 총 둘레는 3.5km입니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 후 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무엇보다 풍납동 일대는 대형 건물 터, 제기, 동물 뼈 등이 발견되면서 많은 학자들이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시대의 왕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풍납동 경당지구에서 발견된 우물 안에는 백제토기가 층층이 쌓여있었는데 의식을 치른 후 토기의 입술 부분을 일부러 깨트려 우물에 토기를 던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형 구덩이에서도 다량의 토기 조각과 동물 뼈가 출토되었습니다. 제사를 지낸 후 사용한 토기와 희생된 동물을 폐기한 유구로 보입니다.
오랜 세월 땅 아래 파묻혀 있는 풍납토성이 세상 밖으로 드러난 것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청동제초두 같은 중요 유물이 발견되면서 토성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그 후 1963년에 사적 제11호로 지정됐지만 안타깝게 성벽만 지정되고 토성 주변 일대 토지가 제외되면서 현재 겪고 있는 토지보상 갈등의 발단이 됐습니다.
그러다 1997년 아파트 터파기 기초 공사장에서 백제 토기를 대거 발견한 이형구 선문대교수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신고하면서 풍납토성이 베일을 벗었습니다.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시간이 멈춘 오래된 주택가
이때부터 풍납동은 도시개발 제한과 개인 재산권 제약을 받게 됐습니다. 풍납토성 주변 주택가가 1990년대에 시간이 멈춘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급 아파트단지, 상업지구로 변모한 잠실, 강동 일대와 비교할 때 재산권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원성은 커질 수밖에 없었지요.
‘백제를 느끼지 못하는 백제유적지’란 숙제를 풀기 위해
풍납동 일대는 유구 보존지역 1~3권역 약 72만7000㎡를 정해 주민들의 토지를 매입해 나가는 중입니다. 특히 2019년에 서울형 도시재생사업 후보지(역사문화특화형)로 선정돼 풍납동에 온기가 돌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5년 동안 도시재생사업에 200억 원, 문화재복원정비사업에 1186억원이 투입돼 백제 문화와 유적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이 진행됩니다. 백제역사문화 체험마을 조성, 천호역과 풍납전통시장, 백제문화공원을 역사문화특화거리로 조성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제 첫발을 뗀 풍납토성 일대 정비와 복원 사업, ‘지붕 없는 역사박물관’이란 청사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과 토론, 협업, 실천이 필요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