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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이작가 Aug 06. 2018

이러니까 버린 거네

고장난 물건에 대하여

어느 날,
엄마는 고장 난 선풍기를 주워왔다
갑자기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1인1풍기가 필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솜씨가 좋은 아빠는 선풍기를 고쳐냈고
엄마는 이 멀쩡한 걸 왜 버렸을까 생각했다.

그 후 초복이 지나고 중복까지 그 선풍기는
그럭저럭 쓸 만했다.
달달 거리는 소리는 좀 났지만..

그러나 중복이 지나면서부터
참을 수 없는 이상징후를 보였다.

전선줄이 이상한지,
조금만 줄을 건드려도 선풍기가 꺼져버리는 것!

주방에서 요리 후,
식지 않는 더위를 선풍기 곁에서 견디는데
갑자기 선풍기가 힘없이 탁! 꺼져버리면,
그야말로 짜증이 치밀었다.

“그래, 이러니까 버린거네”

고장 난 물건은
누군가의 인내심을 보여준다.

참고 고치고 인내하며
어떤 물건을 버리지 않고 쓴 것은
그 사람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물건을 버려야겠다 마음먹은 순간까지가 그 사람의 인내심이 아닐까,

고장 난 선풍기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멀쩡한걸 버렸다고
어떤 한 가정의 인내심을 욕한 나는
이내, 그 선풍기를 인내하며 썼을 사람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래서 버린 거였구나.
고치고 고치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버린거였어.

이렇게 누가 버린 인내심은
내가 다시 경험해보면 이해가 쉽다.

요즘 젊은이들은 쉽게 직장을 그만둔다,
이혼율이 왜 이렇게 높아? 다 참고 사는거지,
우리 애들은 뭐든 참지 않고 마음대로 하려해..

이 말은, 때에 따라 진짜일 수도 있지만,
오래된 선풍기를 쓰다쓰다 버리기로 결심한
어느 가족의 결단처럼.

이제는 정말 버려야하는 순간임을
경험으로 느끼고 신중히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든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수밖에.

이해란,
갑자기 꺼져버리는 선풍기가
얼마나 짜증나게 하는지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것처럼,
참 심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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