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인데 아내가 할 일이 있어 학교에 간단다. 운전면허가 없는 아내는 버스 타고 갈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다. 사는 곳이 수도권이기는 하지만 대중교통이 형편없어 고립된 섬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고, 지하철도 없다. 유독 대중교통의 혜택을 적게 받는 곳이라 승용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곳도 여러 차례 환승해서 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나는 이 지역에 정착한 10년 동안 아내의 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일이 귀찮을 때도 있지만 장점이 있다. 서로 바빠서 대화할 시간이 없는데, 출퇴근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티격태격 싸우고 뿔이 잔뜩 나 있어도 다음날 아내의 발(☳)이 되어 출근을 하고 나면 이내 아내 마음이 봄바람(☴)처럼 풀어진다. 내 몸이 조금 수고스러워도 아내의 시간과 고단함을 줄임으로써 가정에 화목함을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이익(利益)이 또 있을까.
아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는 인근 공원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산책을 하며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아내의 발이 되는 모양이 풍뢰 익(䷩) 괘의 상과 닮아 있다.
䷩ 풍뢰 익
<주역전의>에서는 풍뢰 익 괘에 대해 "위의 괘가 덜어져 아래 괘에 더해졌으니,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해줌은 덜어서 유익함이 되는 것이니, 이는 의(義)로써 말한 것이다. 아래가 후하면 위가 편안해진다. 그러므로 아래를 더해줌이 익(益)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해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풍뢰 익은 천지 비에서 나왔다. 천지 비는 상괘가 건(☰), 하괘가 곤(☷)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괘는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 한 치의 물러섬도 없다. 꽉 막혀 있는 것이 바로 천지 비 괘다. 그런데 상괘의 양효가 하괘로 내려와 풍뢰 익(䷩) 괘가 되었다(4효와 1효가 자리를 바꿈). 꽉 막힌 천지에서 바람(☴)과 우레(☳)가 발생하니, 우레와 바람 두 물건은 서로 더해주는 것(益)이다.
䷋ 천지 비 - ䷩ 풍뢰 익
균형발전 전략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노동에 의한 소득보다 금융에 의한 소득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부모의 재력은 젊은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달리기 경주에서 출발선이 다르다면 어느 누가 승자에 대해 존경을 표할 것이며, 어느 누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것인가. 이 사회에 '공정', '정의', '아빠 찬스' 등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개인의 부도덕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경제적 불평등은 공간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산업화 이후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산업 시설이 집중 분포되어 공간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1972년 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시작된 이래 4차 수정계획(2011~2020)까지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지방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 간 생산 능력에 차이가 커지는 것을 보면 지금까지 진행되었던 균형 발전 전략이 적절했나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아래 시도별 자료를 보면 2020년 현재 국내총생산이 1,936조 원인데,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1,062조 원에 달해 55%에 달한다. 국토 전체 면적의 10%에 해당하는 수도권에 국내총생산의 절반 이상이 집중되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불균형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 간 생산능력의 차이는 곧 재정자립도의 차이로 나타난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자치단체의 전체 예산규모 중 자체 수입인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비율을 말하는 것인데, 쉽게 말하면 재정자립도는 특성상 자치단체의 수입 중 '스스로 벌어 들일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스스로 벌어 들일 수 있는 재정능력이 낮은 것'을 의미한다. 재정자립도가 특히 낮은 전북, 전남, 충북, 강원, 경북 등은 이렇다 할 생산 능력을 갖추지 못하여 세금을 낼 여력이 없다. 따라서 이 지역들은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스스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정상적인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재정 자립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에서 독립할 수 있는 지역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의 수도권 중심의 발전 전략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지방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4차 수정계획에서 '경쟁력 있는 통합 국토' 실현을 위해 "개별 지역이 통합된 광역적 공간 단위에 기초한 새로운 국토 골격을 형성하여 지역특화 발전 및 동반성장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이 취약한 지방에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공간적 불평등에서 벗어나 전 국토가 골고루 잘 살게 되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이롭게(益) 하는 길이다.
천지 비(䷋)에서 풍뢰 익(䷩)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 시도별 지역내 총생산(출처:통계청)
우리나라 시도별 재정자립도(출처:통계청)
소나무와 솔방울
아내를 기다리다가 만난 소나무 숲에는 솔방울이 가득하다. 풍뢰 익의 상괘는 손(☴)이니 오행으로 보면 음목(陰木)이고, 하괘는 진(☳)이니 오행으로는 양목(陽木)이다. 손의 나무(4,5,6)에서 진의 솔방울(1,2,3)이 땅에(2,3,4, ☷) 떨어졌는데, 큰 햇살(1,2,3,4는 큰 리(离, ☲))이 비치고 있다. 그 모양이 풍뢰 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