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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Jan 26.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43. 택천(澤天) 쾌(夬): 화산과 칼데라

겨울밤 식구들과 사이다를 나눠 먹었던 40년 전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행복하다. 병따개로 뚜껑을 여는 순간 병은 "뽕"하며 소리를 내고, 올망졸망 형제들은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초록빛 사이다병을 들고 설쳐 댔다. 맑은 사이다를 콸콸콸 따르면 하얀 거품이 톡톡톡 튀었다. 차갑고 톡 쏘는 맛에 아이들 얼굴이 잠깐 찡그려지고, 자식들 짓는 귀여운 표정에 부모님 얼굴도 편안해지셨다. 지금이야 사이다가 플라스틱 용기나 캔에 담겨 있어 뚜껑 따는 정취는 없지만 사이다의 달콤하고 톡 쏘는 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탄산가스의 강한 압력(☰)을 받은 사이다의 뚜껑 열리는 모양(☱) 택천 쾌(䷪)를 연상케 한다.

䷪ 택천 쾌

  쾌(夬)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더하고(益)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터진다. 그러므로 쾌(夬) 괘로 받았으니, 쾌(夬)는 터짐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두 체(體)로써 말하면 못은 물이 모인 것인데 마침내 지극히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니 터지는 상(象)이 있다."라고 하였다.

지뢰 복의 양()이 점차 자라나 지택 림, 지천 태, 뇌천 대장에 이어 택천 쾌로 성장했다. 양강이 점차 자라나 나아가고 있으니 스스로 그치지 않으면 더는 막지 못하고 터지는 모양이다. 양이 자라나 1효부터 5효에 이르니 전체가 단단하나 오로지 6효만이 음으로 유(柔) 하니, 위가 터진 사이다 병의 모양이다.


䷗지뢰복-䷒지택림-䷊지천태-䷡뇌천대장-䷪ 택천쾌


화산활동, 화구, 칼데라

화산의 분화 과정에서 사이다 탄산가스가 병에서 나오는 것과 유사한 작용이 나타난다. 화산 활동은 아래 지도에서처럼 해저의 중령 해령, 아이슬란드, 동아프리카 지구대, 리오그란데 열곡, 아이펠 화산, 환태평양조산대, 하와이 등 판의 경계, 열점(hot spot), 해령 등에서 발견된다.

지각판, 판경계, 화산 분포(출처:유엔환경계획 한국협회)

지하 깊은 곳의 물질들이 어떤 요인에 의해 녹아 마그마가 되면, 마그마는 주변보다 밀도가 낮아져 상승하게 된다. 이때 마그마에 녹아 있던 가스가 급격히 배출되는데, 배출된 가스는 마그마의 밀도를 더 낮게 만들어 마그마의 상승을 돕는다. 마그마는 압력을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은 가스를 가질 수 있는데, 상승하면서 점차 압력이 낮아진 마그마는 가스를 급격히 배출하게 된다. 이렇게 마그마 바깥으로 쏟아져 나온 가스는 지각에 막대한 압력 가하게 되는데, 이때  지각의 약한 틈을 뚫고 마그마와 가스가 솟아 나오면 화산 분출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지각은 우리가 느끼기에는 두껍고 단단하기만 한데 약한 틈이 있을까? 어떻게 마그마와 가스가 지각을 뚫고 나온단 말일까? 지각이 그렇게 약하다는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각은 약하다. 지구 내부는 아래 그림처럼 핵과 맨틀, 그리고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지구의 반지름이 약 6,400km 정도인데 비해 지각의 평균 두께는 36km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마치 큰 통에 끓고 있는 카레가 표면이 식으면서 생기는 얇은 막이 지각이라고나 할까. 2,900km에 달하는 고밀도의 맨틀 위로 얇디얇은 저밀도의 지각이 나약하게 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땅은 크고 강하게 보이지만 지구 전체에서 보면 지각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900km 두께의 맨틀은 대류를 하며 지각에 힘을 가한다. 이때 지각은 융기와 침강, 습곡과 단층, 화산 활동 등 지각운동을 하게 된다. 지각에 비하면 맨틀의 존재는 극강의 존재이다. 지각은 맨틀 위를 떠다니는 조각들에 불과하며, 그 조각의 경계에 마그마가 분출되는 것은 결코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니다.   


지구 내부 구조. 지각의 두께는 지구 전체에 비하면 매우 얇다.

아래 사진은 세계 여러 지역의 화산 분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지구 내부에서 받은 압력이 지각의 약한 부분을 터뜨리고 나온 것이 화산 분출이다. 마그마가 음유한 곳을 터뜨리고 나오는 형상이 택천 쾌(䷪)의 모양이다. 한편, 화산 분출로 인해 칼데라 호, 화구 호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하늘 높은 곳에 연못이 만들어졌으니 그 모양이 그야말로 택천 쾌이다. 칼데라는 화구의 일종인데, 화산 분출로 인해 화구가 함몰된 분지를 말한다. 화구와 칼데라 분지에 빗물이 고여 생긴 연못이 생기면 이를 화구호, 칼데라 호라고 부른다.


하와이(좌상), 뉴질랜드 화이트아일랜드(우상), 인도네시아 이젠 화산(좌하), 일본 가고시마 사쿠라지마 화산(우하)(사진 출처:pixarbay)

드라마 <여인천하>

2001년부터 2002년에 걸쳐 SBS에서 방영했던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있다. 남성 중심의 역사 그 이면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정치를 했다는 가정으로 펼쳐진 이 드라마의 관점이 신선해서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의 등장인물인 정난정, 문정왕후 등 여성들이 고관대작, 왕 등 남성들을 조종하며 정치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로웠다.

자신의 권력을 얻기 위해 배후에서 비선 실세로 움직이며 정치인들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5개의 양 위에 하나의 음이 올라탄 택천 쾌(䷪)의 모양과 유사하다. 양이 강하기는 하지만 음의 지위가 높아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택천 쾌 괘의 상육(6)이다. 그래서 상육(6)의 입장에서는 권력의 단맛을 느낄 수 있으니 이러한 영화가 계속될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이 자리에서 영화를 누리려고 했던 사람들 중에 결말이 좋은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산지 박에서 여러 소인배들(1,2,3,4,5의 음)에 못 견뎌 군자(6)가 물러났듯이 반대로 택천 쾌는 여러 군자들(1,2,3,4,5의 양)에 의해 소인(6)이 쫓겨나는 모양이다. 택천 쾌에서 상육은 가만히 놔두어도 소멸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논어>에 "정치(政)는 바르게 하는 것(正)이다."라고 했다. 전 정권의 과오는 택천 쾌의 상육(6)에 권력의 핵심 인사들이 고개 숙였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 선거가 40여 일 남은 지금 정당하고 떳떳하게 소통하며 정치할 수 있는 인물을 기다려본다.  

䷖ 산지 박 - ䷪ 택천 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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