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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Jan 27.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44. 천풍(天風) 구(姤): 마이스 산업

중고생 시절 남녀 공학 학교에 다니기는 했으나 남녀 분반이었고, 현관의 동편과 서편을 나누어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마주치지도 못하게 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을 가질 나이었지만 그 시절엔 평범한 학생들은 이성을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에 입학을 하니 이제는 이성들 보는 게 낯설고 어색했다. 친구가 신경 써 만들어 준 단체 미팅에서 상대가 초면에 테이블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당분간 이성 만나는 일을 미루기로 했다.  

이듬해 봄이 되어 나는 대학 2학년이 되었고, 신입생들이 들어왔다. 착하게 생긴 앳된 후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모임에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집도 같은 방향이라 함께 전철을 타고 귀가했다. 자주 만나니 감정이 싹트고, 싹튼 감정이 자라났다. 그 앳된 후배는 지금 나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아이들 엄마가 되어 나와 인생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신입생 시절 만난 아내를 생각하니 천풍 구 괘가 눈에 어린다. 남자들만 득실거리던 시절(䷀)을 지나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은 중천 건 괘가 천풍 구 괘로의 변화라 할 수 있다. 첫 미팅 때 만나고 단번에 돌아섰던 상대가 택천 쾌(䷪)의 상육(6)이라면 내 마음속에 들어온 앳된 신입생은 천풍 구의 초구(1)에 해당한다. 택천 쾌가 '결별', '헤어짐', '나뉨'의 뜻이고, 천풍 구는 '만남', '접촉'의 뜻이니 사람의 헤어짐 뒤에는 반드시 만남이 있다.

䷪ 택천 쾌 - ䷀ 중천 건 - ䷫ 천풍 구

천풍 구(姤) 괘에 대해 <주역전의>에서는 "괘 됨이 건(乾)이 위에 있고 손(巽)이 아래에 있으니, 두 체(體)로 말하면 바람이 하늘 아래에 다니니, 하늘 아래는 만물(萬物)이다. 바람이 다님에 만나고 접촉하지 않음이 없으니 바로 만나는 상(象)이요, 또 한 음(陰)이 처음 아래에서 생기니, 음(陰)이 양(陽)과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구(姤)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이스(MICE) 산업, 돈 바람을 잡아라.

천풍 구(䷫) 괘는 맑은 하늘 아래 바람이 부는 모양이다. 바람(☴)은 사방이 탁 틔여 있는 곳에서 잘 불기 때문에 널따란 벌판이 손(☴)이요, 벌판의 바람처럼 사통팔달 교통이 좋은 곳이 손(☴)이다. 교통이 좋은 곳은 사람이 쉽게 만나는 곳이기에 돈이 돌고 도는 곳이라, 돈이 손(☴)이요, 돈 버는 곳에서는 행운도 흘러드니 운도 손(☴)이다. 또한, 천풍 구는 택천 쾌(䷪)에 이르러 힘을 잃었던 음이 중천 건(䷀)에서 사라졌다가 초육(1의 음)으로 부활한 괘이기 때문에  음이 상승하는 기세가 강하다. 음은 물질이니, 천풍 구는 물질이 자라나는 때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천풍 구(䷫)상을 지닌 도시들이 있다. 유리한 교통 상황을 바탕으로 부를 이룬 아시아의 홍콩, 싱가포르, 유럽의 프랑크푸르트 등이 그런 곳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오래된 무역항으로 중국과 아시아의 무역선들이 일찍부터 드나들었던 곳이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주요 철도 축이 가로지르는 교통의 요지이다. 바람이 평야를 드나들 듯 사람들이 사통팔달 흘러갈 수 있는 이러한 교통의 중심지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부를 쌓아 올릴 기회를 찾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MICE 산업이 있다.

마이스(MICE) 산업은 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관광(Incentive tour),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Exhibition)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머리를 따서 만든 이름으로서 기업회의, 인센티브 관광, 국제회의, 전시 등의 고급 서비스를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산업을 말한다. 최근 이 산업이 급부상하는 이유는 '굴뚝 없는 공장'으로 불리는 관광 산업의 비지니스형 업그레이드 버전이기 때문이다. 부를 쥐락펴락하는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이 회의를 효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최적의 컨벤션 센터를 만들고, 기왕 회의를 하기 위해 먼 길을 왔으니 그들에게 쇼핑, 레저, 전시 등 휴식과 즐거움을 제공하여 오래도록 체류하게 만들어 지출을 늘리게 하는 것이 마이스 산업이 노리는 점이다. 이를 제공하기 위해 컨벤션, 관광업, 전시, 쇼핑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면 고용 증대 효과 또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탈산업화와 저성장을 맞이한 국가나 지역에게는 매력적인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홍콩, 싱가포르, 프랑크푸르트 등이 일찍부터 이 산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세계 각국도 세계화에 따른 국제회의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MICE 산업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제회의개최 추이(1950~2000)(출처:국제협회연합, UIA)

우리나라도 마이스 산업을 육성하는 지역들이 늘고 있다. 서울의 코엑스, 경기도 고양시의 킨텍스, 부산의 벡스코, 제주의 ICC Jeju 등은 이미 국내외의 대규모 행사를 치른 곳으로 유명하며, 광주, 대전, 전북, 강원도 후발 주자로 합류하고 있다. 

시·도별 전시 시설 수(출처: 통계청)

최근 마이스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로 '유니크 베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유니크 베뉴(unique venue)'란 'MICE 행사 개최 도시의 고유한 콘셉트와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장소'를 뜻하는데, MICE 행사 개최 도시가 품고 있는 지역의 매력적인 '장소성'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코리아 유니크 베뉴 홈페이지(https://k-mice.visitkorea.or.kr/uniquevenue)에 접속하면 한국관광공사에서 발굴한 코리아 유니크 베뉴 40선을 선정했는데,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장소들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2020-2021 전시 산업을 포함해 관광 산업 전반이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고난에도 끝은 있는 법,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 양질의 지역 콘텐츠를 발판으로 MICE 산업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아내의 흰머리

아내는 아침부터 투덜거리며 말한다.

"또 뿌리 염색하러 가야 할 것 같아. 나이가 드니까 염색을 더 자주 하는 것 같아."

가만 보니 머리카락 뿌리에서 흰 머리카락이 올라왔다. 스무 살에 만난 앳된 아내가 어느새 중장년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천풍 구의 글감이 어디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아내의 성가신 머리칼이 천풍 구 괘의 상임을 깨닫는다.

䷫ 천풍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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