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을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개, 고양이, 거북이, 열대어 등 다양한 반려동물을 키워봤다. 그래서 반려동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잘 안다. 생명 하나하나에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마음속에서는 희열이 느껴졌다.
가정을 가진 이후 나는 자식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이 다른 생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세상 만물에 감사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자식들이 세상에 감사한 마음을 품고, 나 아닌 존재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개를 키우려고 몇 차례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먼저 아내와 장모님이 털 날리는 동물을 실내에서 키우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자신이냐 반려동물이냐, 선택해라.'라고 하는 아내와 장모님 앞에서 나는 내 생각을 고집할 수 없었다. 차선책으로 털 없는 물고기를 키워보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나뿐이고 그마저도 관리 능력 부족으로 기생충이 돌아 전부 폐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키우던 물고기들이 모두 죽은 뒤 나는 동물 모형을 모았다. '슐라이히(schleich)'라는 모형 제작 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만든 모형은 시중에 나온 어떤 동물 모형보다 뛰어났다. 동물을 사실감 있게 표현해서 어떤 것들은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생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각종 명절 선물로 이 모형을 사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바도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었다.
집 정리를 하다가 한 곳에 모여 있는 동물 모형들을 다시 한번 헤아려 보았다. 10여 년 동안 꾸준히 모은 그 숫자가 128마리였다. 종류는 다르지만 평화롭게 내 집에서 사는 많은 동물들을 보니 감격스러웠다. 택지 취 괘(䷬)가 보인다. 택(☱)은 연못이고, 그릇이다. 지(☷)는 땅이고, 물건이다. 많은 동물들(☷)이 진열장(☱)에 모여 있는 모양이 택지 취라 할 수 있다.
주역전의에서는 이 괘에 대해 "괘 됨이 태(兌)가 위에 있고 곤(坤)이 아래에 있으니, 못이 땅 위에 올라가 있으면 물이 모이므로 취(萃)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주역>은 택지 취(췌)에 대해 '모이는 덕'에 대해 말하고 있다. 택지 취(萃)는 본래 '췌'로 읽으나 <단전>에 "萃는 聚이다."라는 말이 있어 취(聚)와 같은 발음을 취했다. '취(聚)'는 '모이다.'라는 뜻이다.
䷬ 택지 취(췌)
취락(聚落)의 의미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서로 모여 산다. 사람으로서 단독으로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은 다양한 크기의 집단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지리학에서는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취락(聚落)'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취(聚)'와 '락(落)'은 모두 '모인다'라는 '회(會)'의 의미를 안고 있다.
취락은 그 규모에 따라 크게 '촌락'과 '도시'로 나뉜다. 촌락은 우리 식대로 표현한다면 시골이다. 산촌, 농촌, 어촌 등 자연에 기반한 생활양식이 존재하는 곳이다. 이에 비해 도시는 인구 규모가 촌락보다 크고 공업, 서비스업 등 도시적 생활양식에 기반한 곳이다. 인구 몇 만의 소규모 도시부터 인구 수천 만의 메갈로폴리스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규모는 다양하다. 이처럼 취락의 종류는 기능, 규모에 따라 달라지며 인간 문명의 발달과 맥을 함께 힌다.
아래 사진의 지역은 취락의 몇 가지 사례이다. 경상북도 안동시에 위치한 하회마을(좌상)의 경우 굽이치는 낙동강을 끼고 발달하였다. 낙동강 상류 감입곡류가 감아 도는 하안단구의 평탄면에 마을이 입지하였는데, 하천이 끼고 돌기 때문에 외적 방어에 유리하고 하안단구의 평지를 이용하여 농사짓기에 유리하다. 일찍부터 풍산 류 씨 가문이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마을이다.
성산일출봉(우상)은 사주로 제주도와 연결된 육계도이다. 기다란 육계사주는 제주도와 성산일출봉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통의 길목이 되었고, 지금은 성산일출봉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시설들이 들어섰다. 성산 일출봉에서 내려다보면 육계도에 상업시설과 함께 어촌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산 감천 문화 마을(좌하)은 원래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부산의 평지들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오갈 데 없는 피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이 거주하지 않았던 산비탈에 자리 잡았다. 슬럼으로 시작된 이 마을은 2010년 들어 부산시의 지원으로 예술가들이 자리 잡으면서 '감천문화마을'로 조성되었으며 2019년 통계 기준으로는 25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부산의 주요 관광지가 되었다.
전남 순천 낙안 읍성(우하)은 조선시대 낙안 군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조선시대 왜구를 막기 위해 만든 토성 안에 임경업 장군이 성을 쌓으면서 읍성으로 변모한 마을이다. 대한민국 3대 읍성 중 하나로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연간 12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우리나라의 주요 관광지이다. 현재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및 CNN 선정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 16위로 선정되었으며, 판소리 경연 대회, 가야금 경연 대회 등의 행사를 열어 전라남도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관광의 메카가 된 마을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전통 마을, 현대화된 도시 등 다양한 형태의 취락이 있다. 사람이 모여 살고있는 공간인 취락이 택취 취(䷬)의 상이다.
안동 하회마을(좌상), 제주 성산읍(우상), 부산 감천마을(좌하), 전남 순천 낙안읍성(우하)
'택지 취'의 덕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과 모여 일상을 보낸다. 그래서 반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수업을 하면서 기력이 소진되는 반이 있는가 하면 수업을 더 하고 싶은 반이 있다. 왜 그럴까?
교실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장소인데, 이는 택지 취(䷬)의 모양이다. 택지 취(䷬)의 상괘는 태(☱, 兌)인데 기쁨(열, 悅)을 나타낸다. 하괘는 곤(☷, 坤)인데 소처럼 순함을 나타낸다. 수업을 주도하는 교사는 취 괘에서는 구오(5)에 해당한다. 교사가 강의를 하고 있는데,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수업을 들으며(4,5,6), 교사의 지도대로 학생들이 순순히 따라온디면(☷) 이보다 더 좋은 반은 없다.
2021년 수업을 마치면서 학생들이 롤링페이퍼를 써주었는데, 수업시간 조용히 앉아 순하게 따라왔던 아이들이 적은 것이라 내심 놀랐다. 아무 생각 없이 수업을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의 손짓 하나, 표정 하나에도 주목하며 따라온 것을 페이퍼를 읽고 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