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택수(澤水) 곤(困): 뉘우치면 곤궁(困窮)함에서 벗어난다
‘곤(困)’ 괘는 위로는 연못(☱), 아래로는 물(☵)이 결합된 모양이다. 연못(澤)은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릇의 상(象)이니, 연못이나 호수일 수도 있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댐일 수도 있다. ‘물(水)’은 모양이 없는 것들의 상(象)이니, 물(H2O)을 의미할 수도 있고, 어떤 용기에 담긴 팝콘 같은 내용물일 수 있다. 또한 무언가가 틀을 잡아주지 않으면 여지없이 흩어지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혼잡함, 어지러움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역전의』에서는 택수곤(困) 괘에 대해 “물이 아래로 새면 못 위가 마른다. 그러므로 못에 물이 없다고 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김샜다.’라는 말처럼 무언가가 담기지 못하고 새버려서 곤경에 처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돈이 필요할 때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생겨 곤란한 경우라든가, 유출되지 말아야 할 비밀스러운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 곤경에 처하기도 한다. 목은 마른데 바가지가 깨져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곤(困)괘이다. 이러한 곤(困) 괘가 지리적으로는 어떤 현상과 연결될 수 있을까?
첫 번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제주도의 물 이야기이다. 제주도의 하천은 평상시에는 대부분 말라있다. 제주도에서는 건천(乾川)이라 하여 비가 많이 올 때만 하천에 물이 흐른다. 그 이유는 제주도가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섬이기 때문에 지표면은 다공질의 화산재가 덮여 있고, 땅 속으로는 주상절리가 발달하여 비가 오면 대부분의 물이 땅으로 스며든다. 따라서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다우지이지만 실상은 지표수가 부족하여 예로부터 주민들이 물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제주도 중(中) 산간(山間)에 사는 아낙들은 등에 물허벅을 짊어지고 해안가의 용천(湧泉)을 찾아 나섰다. 아낙들이 물 기르느라 고생을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가부장적 사회에서 물 부족의 어려움은 오롯이 제주도 여성들의 몫이었다. 제주도는 택수(澤水) 곤(困) 괘(卦)가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1960년대 이후 수도(水道)가 놓인 이후 물허벅을 지는 아낙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제주도의 삶은 육지의 모습과 닮아갔다.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7년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구상에 따라 본격적으로 상수원 개발 사업이 시작됐고, 1970년대 들어 지하수 관정 개발 사업이 병행 추진됐다. 1972년부터 생활·농업용으로 이용하기 위한 다목적 지하수 관정 개발 사업이 본격 추진돼 1979년까지 지하수 관정 124공이 생겨났다. 그러나 행정기관 주도로 이뤄지던 지하수 관정 개발이 관광호텔, 여관, 목욕탕, 농업용 등 개인용도로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지하수 고갈 또는 지하수 함양지역에 해수 침투 가능성 등 난개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7년 말 기준 4천818개 관정(공공관정 1천389공, 사설관정 3천429공)이 허가된 상태다. 50년 가까이 지하수 개발이 이뤄지는 동안 지하수 관정이 5천개가량 생겨난 셈이다. 최근 20년간 제주도의 청정(淸淨)한 이미지를 이용해 일부 기업들은 제주의 물을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전국에 판매하기도 했다.
지하수를 펑펑 사용하다 보니 조금씩 이상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기간 측정된 지하수위 시계열 자료를 사용해 지하수의 변화추세를 분석해 보면, 2012∼2017년 기간에는 모든 유역에서 지하수 높이가 감소추세로 변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의 지하수 개발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곤(困)한 상황을 사람들이 또 한 번 곤(困)하게 만드니 제주도는 언제 곤(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또 한 가지 사례로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걸쳐 있는 아랄(Aral) 해(海)의 상황을 들 수 있다. 아랄 해는 총면적이 6만 8,000㎢로 대한민국 면적(약 10만㎢)의 70%에 달하는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였다. 특히 철갑상어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해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어로를 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이 지역의 목화개발을 위해 아랄 해에 유입되는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 두 곳에 댐을 세웠다. 아랄 해는 시르다리야 강과 아무다리야 강이 유입되어 유지되는 호수이기 때문에 유입되는 물의 양이 줄면서 아랄 해는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호수가 마르자 일교차가 커지고, 강수량이 줄면서 주변 지역의 기후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랄 해의 물이 줄며 호수의 염도가 증가했으며, 염분이 지표면에 집적하면서 목화 농사를 짓던 농토도 황폐화되었다. 결국 호수의 면적이 줄어 바닥이 드러나면서 아랄 해는 북(北) 아랄 해와 남(南) 아랄 해로 두 쪽이 나버렸다. 현재 아랄 해 주변 나라들이 아랄 해의 축소로 피해를 입자 댐의 물을 방류하고 농업용수의 사용을 제한하여 복구에 힘쓰고 있지만 파괴된 아랄 해는 복구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아랄 해의 상황은 호수에 고여야 할 물이 어딘가로 사용되어 말라버린 택수(澤水) 곤(困) 괘(卦)를 너무나 닮아 있다. 아랄 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곤란함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제주도와 아랄 해의 곤궁함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주역의 처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곤(困) 괘의 여섯 번째 효(爻)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상육: 칡덩굴처럼 엉켜 곤궁하고, 위태로운 곳에 처해 곤궁하니, 움직일 때마다 뉘우침이 있을 것이다. 뉘우치는 마음을 두고 나아가면 길하다.”
그쳐야 할 때 그치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그쳐야 할 때 그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살필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곤란한 상황이 자신이 잘못하여 발생한 문제인지, 주변 상황에 의해 곤란하게 된 것인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잘못된 점은 뉘우쳐야 한다. 물질적인 욕구에 탐닉한 나머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보지 못하면 오래지 않아 반드시 탈이 난다. 주역은 뉘우침(悔)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잘못을 정벌(征伐)하듯 고쳐 나간다면(征) 곤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주도의 지하수량이 감소하고, 아랄 해가 파괴되는 상황은 자연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사사로운 마음, 물질적 탐욕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주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하고 철저한 반성과 실행을 통해 곤궁함을 떨쳐버릴 것을 조언(助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