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근원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자 특권이다. 그래서 제사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자신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그 마음을 더 밝게 만드는 의식이다. 제사는 결코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 아름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마음을 밝히는 의식이 각 집안마다 있다는 것은 집집마다 금고가 있어 그 안에 가보를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다. 집안마다 내려오는 정신적 자산은 수천 금의 물질적 자산과는 비교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나는 가끔 제사가 K-POP의 '범내려온다'처럼 우리의 문화적 자산으로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선행해야 할 숙제가 있다. 제사가 과거의 틀을 고수한 채 경직된 형식에 머무른다면 이것을 전하려는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범내려온다'처럼 우리의 문화가 빛나게 하려면 전통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동시에 창의적인 혁신을 가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제사가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오해받아 사라진다면 우리는 훌륭한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다. 때문에 집집마다 제사가 지닌 정신적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형식을 재구조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낸다.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음식들이 상에 정갈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주전자를 들고 정성스레 술을 따르는 초등학생 큰 아들이 있다. 나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제사는 그 안에 소중한 마음이 담겨 있으니 그 소중한 마음 잊지 말거라.'라고 이야기해본다. 아들은 조용히 끄덕이며 아비의 말을 듣는다.
장손(☳)인 나와 그 뒤를 이을 장손(☳)인 큰 아들이 앉아 제사상에 올릴 술을 따른다. 두 개의 진(☳) 괘가 모인 중뢰 진(䷲) 괘가 나와 아들의 모습 같다.<설괘 전>에서는 장남은 ☳, 중남은 ☵, 차남은 ☶, 장녀는 ☴, 중녀는 ☲, 소녀는 ☱라고 했다. <주역전의>에서는 진 괘에 대해 “ 건(乾)·곤(坤)의 사귐이 한번 찾아 진(震)을 이루니, 낳은 물건의 우두머리이다. 그러므로 장남(長男)이 되었다. 그 상(象)은 우레가 되고 그 뜻은 동(動)함이 되니, 우레는 진분(震奮)의 상이 있고 동(動)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뜻이 된다."라고 하였다.
䷲ 중뢰 진
지리적으로 알차게 사는 법
인생은 짧다. 짧은 인생을 보다 알차게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리적으로도 알차게 사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세 사람이 서울에서 광주로 일을 보러 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세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이동한다. 첫 번 째는 도보, 두 번 째는 말, 세 번 째는 자동차를 타고 간다.
①도보: 사람이 한 시간에 평균 4Km를 이동할 수 있으니 약 300Km 거리에 있는 광주까지는 75시간이 걸린다. 하루에 열 시간씩 걷는다고 치면 7일 반이 걸린다.
②말: 말은 시간당 20km를 갈 수 있다. 쉬지 않고 달리면 15시간이 걸린다.
③자동차: 자동차를 타고 시속 100Km로 가면 특별히 다른 변수가 없으면 3시간이 걸린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도보로 가는 사람보다 15배, 말을 탄 사람보다 5배 빠르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도보로 이동한 사람보다 목적지에 72시간 먼저 도착했고, 말을 탄 사람보다 12시간 먼저 도착했으니, 자동차를 탄 사람은 도보나 말을 탄 사람에 비해 많은 시간을 절약했다. 절약한 시간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지리적으로 알차게 사는 방법이다. 절약한 시간에 돈을 벌면 부유해지고, 절약한 시간에 공부를 하면 똑똑해진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교통 인프라를 꾸준히 발전시켜 온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 그림은 공간 거리와 시간 거리의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평택, 서울-광주의 절대적 거리는 각각 77Km, 301Km이다. 그런데 고속철도가 놓인 후 서울-광주 간 시간 거리는 1시간 40분으로 평택과 같아진다. 이것이 도로, 철도, 공항, 항구가 잘 구축한 국가의 국민들이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민들에 비해 더 알차게, 경쟁력 있게 살 수 있는 이유이다.
공간거리와 시간거리(출처:국토연구원, 충북일보)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교통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구축되었다. 1970년 경부고속국도의 개통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었고, 주요 국가 기간망인 고속국도, 철도, 공항, 항만이 정비되었다. 이후 2004년 경부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반나절 생활권’이 가능해졌으며, 지금은 공항을 보유한 도시의 경우 서울까지 한 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주요교통망의 형성과정(출처:국가지도집)
최근 우리나라는 차세대 고속철도, 자율주행 자동차 등 새로운 교통수단들도 도입을 준비 중이다. 특히, 차세대 고속철도인 초전도 자기 부상(600km/h), 하이퍼루프(1,200km/h)가 국내 경부축(서울∼부산)에 도입될 경우 시간 거리는 더욱더 단축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초고속교통망이 구축되었을 경우 시공간 압축(콤팩트)된 국토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X자형 초고속교통망이 만들어질 경우 우리 국토를 75% 압축된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국토 공간을 4배 이상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초고속교통망에 따른 콤팩트 국토 개념(출처:국토연구원)
우리나라가 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를 겪으며 국민들 입에는 "빨리, 빨리"가 입에 붙었다. 외국인들은 그러한 습관을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성장을 향한 조급함과 상대에 대한 질책으로 인해 굳어진 "빨리, 빨리" 문화는 우리가 깊게 성찰해야 할 주제이다.
나는 빨리빨리의 의미가 긍정적 의미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산업사회의 찌꺼기로서의 "빨리빨리"가 아니라 교통의 발달로 국토를 종횡으로 누빌 수 있는 선진 국토로서의 의미가 담긴 "빨리(☳) 빨리(☳)"로 말이다.
빠르게 움직임을 뜻하는 진(☳)이 중첩된 중뢰 진(䷲) 괘에서 국토를 사통팔달 빠르게 누비는 하이퍼루프 기차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입춘 그림
중뢰 진(䷲) 괘의 글감을 찾다가 고민스러워 머리를 식힐 겸 <중용>을 꺼내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하늘의 명령(天命)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도(道)를 닦는 것을 교(教)라고 한다."
우레(☳)는 하늘의 소리이다. 그러니 중뢰 진(䷲)의 상괘는 천명(天命)이다. 중뢰 진(䷲)의 하괘는 상괘의 모습을 따랐으니(☳), 이는 천명을 따르는 인간 본성(性)이다. 하늘이 명령한 본성을 마음속에 품고 있으니, 우리는 소중한 존재다.
글감을 하나찾았다고 기뻐하며 거실에 나가니 쌍둥이 아이들이 유리창문에 히히덕거리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입춘 기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밖은 영하의 날씨이고, 드문드문 눈이 쌓여 있는데 봄은 봄이다. 인간의 본성은 하늘의 명령을 따른다고 했던가. 잠자는 새싹(☳)이 유리벽에서 파릇파릇 솟아나니 힘이 솟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