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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 작가 Aug 24. 2022

지리교사 주역을 만나다.

54. 뇌택(雷澤) 귀매(歸妹) : 저어새의 회귀

시흥의 연안 습지

경기도 시흥에는 갈대 숲이 우거진 연안 습지와 갯벌이 있다. 이 일대는 경기만의 드넓은 갯벌과 연안 습지가 있었던 곳인데, 이 곳이 인천 남동공단, 시화공단, 송도 신도시, 배곧 신도시 등으로 개발되면서 습지 대부분은 사라졌다. 다행히 일부 습지를 인천시와 시흥시가 보전하였고, 지금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내만 습지를 볼 수 있는 생태적으로 보석 같은 곳이 되었다. 이 갯벌과 습지에는 게, 망둥어, 금개구리, 맹꽁이 등이 살고 있고, 갯골에는 기수지역을 터전으로 하는 새우, 가물치 등 수생 생물들이 오르내린다. 그리고 이것들을 먹이로 하는 갈매기, 기러기, 왜가리, 도요새, 저어새와 같은 새들이 쉼 없이 날아다닌다. 연안 습지(☱)에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을 품은 이 곳을 산책하며 뇌택 귀매의 상을 떠올린다.

䷵ 뇌택 귀매<-->䷊ 지천 태

귀매(歸妹) 괘는 위가 우레(☳), 아래가 연못(☱)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 이 괘는 위가 땅(☷), 아래가 하늘(☰)로 이루어진 지천 태 괘에서 온 것이다. 땅은 어머니이고, 하늘은 아버지인데 서로 사귀어 편안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태(䷊) 괘인데, 귀매 괘에 와서는 3효와 4효과 서로 자리를 바꾸어 위는 장남(☳), 아래는 소녀(☱)가 되었다. 이는 부모(䷊)가 만나 두 자식(䷵)을 낳은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귀매라는 이름은 우레와 연못의 사귐이 남녀간의 만남으로 본 것이다. 특히, 누이가 시집을 가는 모습에 연결시킨 것이다. 전통적인 해석은 소녀가 장남에게 시집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괘전에는 "귀매(歸妹)는 여자가 시집감이니, 매(妹)는 소녀(少女)의 칭호이다. 괘 됨이 진(震)이 위에 있고 태(兌)가 아래에 있으니, 소녀(少女)로서 장남(長男)을 따르는 것이다. 남자는 동(動)하고 여자는 기뻐하며 기뻐함으로써 동(動)하니, 이는 모두 남자가 여자를 기뻐하고 여자가 남자를 따르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다산 선생은 이의를 제기하여 다르게 해석하였다. 우레를 뒤집으면 산이 되는데, 산은 소남이다. 소남이 소녀에게 다가가는 모양이라는 것이다.(출처: 다산의 주역사전) 남녀의 만남의 의미가 담긴 함(咸)·항(恒)·점(漸)·귀매(歸妹)는 서로의 배합이 중요하니 괘 하나를 뒤집어 서로 마주본 후에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소녀(☱)에게 소남(☶, 뒤집아진 ☳) 이 다가오는 것이니 남자가 장가를 오게 되는 모양이다. 남녀의 만남으로 인간사가 형성되듯 하늘과 땅이 서로 배합하여 자연이 유지된다.

시흥시의 연안습지에는 하늘과 땅의 조화로 말미암아 생명이 가득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세계적인 희귀새, 저어새

경기도 시흥시의 갯골 주변은 수도권에서는 매우 희귀한 생태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 있다. 왜냐하면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 종인 저어새 무리를 볼 수 있는 경기도 유일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이곳을 산책하다가 갯골 주변에 하얀 새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움직임이 특이한 놈들이 있었다. 주걱 모양의 검은 부리와 얼굴을 한 새들이 갯골(☱)의 얕은 곳에 부리를 처박고 좌우로 저으며 사냥을 하는데, 순간적으로 물고기를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낚아채서 목으로 넘겼다. 다큐멘터리에서만 보았던 세계적인 희귀종 저어새를 근거리에서 육안으로 관찰한 순간이었다. 한참 동안 경외감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를 열어 사진에 담았다.

경기도 시흥시 연안 습지에 모여든 저어새 무리

저어새(black-faced spoonbill)부리의 생김새를 토대로 이름이 붙여졌다. 학명으로는 'Platalea minor'인데, 'plata'는 말은 라틴어로 '평평하다.'라는 뜻이다.

저어새는 1950년대 이전에는 동아시아에서 흔한 새였다고 한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개체수가 급감하여 1988년에는 288개체만 관찰되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1994년에 저어새를 심각한 멸종위기종(Critically Endangered; CR)등급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저어새를 보호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으로 저어새의 개체수 파악을 위한 전 세계의 월동지 동시 조사가 매년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21년 1월 15일에서 17일 사이에 실시된 동시조사에서 전 세계 총 5,222마리의 저어새가 관측되었다고 한다.(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저어새의 분포 지역

저어새는 전 세계에 총 6종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우리나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저어새(black-faced spoonbill)와 노랑부리저어새(Eurasian Spoonbill)이다. 저어새는 해안의 얕은 곳이나 갯벌, 갈대밭 등에서 생활하는데 비해 노랑부리저어새는 습지, 얕은 호수나 늪지, 큰 하천, 하구의 진흙, 암석과 모래로 덮인 섬 등지에서 산다. 따라서 해안가의 갯벌에서 발견되는 것은 저어새이고, 내륙의 호수나 하천 주변의 습지, 논에서 발견되는 것은 노랑부리저어새라고 볼 수 있다.(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전 세계 저어새 분포 지역(출처: 저어새 가이드북 2018, WWF)
동아시아 저어새 서식지 분포 현황(2016년)(출처: 저어새 가이드북 2018, WWF)

그런데 저어새들의 서식지가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위의 지도 '동아시아 저어새 서식지 분포 현황(2016)'을 살펴보면 저어새의 활동지는 대부분 인간의 활동이 활발한 해안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해안 지역은 해상 무역이 활발해지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갯벌을 매립하고 항구, 공업단지로 급격히 개발되었다. 특히, 베트남, 중국 동부지역, 대만 해안지역, 한반도 서해안, 일본의 남서부 해안은 대규모 공업 단지가 건설된 지역들이다. 저어새의 개체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안정된 활동지와 번식지인데, 해안의 개발로 인해 저어새의 서식지는 꾸준히 감소하였다. 일례로 인천 송도 갯벌의 경우 지속적인 매립 사업이 이루어졌다. 갯벌의 면적이 감소하면 저어새는 새끼를 먹이기 위해 보다 먼 곳까지 날아가야 한다. 결국 번식기 동안 키워내는 새끼의 수가 감소하고, 저어새 수가 감소하게 된다.

저어새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낚시와 관련이 있다. 부리를 저어서 먹이를 잡는 행동 특성상, 무심코 버린 낚시줄과 낚시바늘이 부리나 몸에 걸려 부상을 입거나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16년 기준 낚시 레저 인구는 760만 명이 넘는다.(한국해양수산개발원) 낚시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얼마나 많은 납덩어리와 낚싯줄, 낚시 바늘을 사용하는지 알 것이다. 이것들이 저어새를 옭아매어 개체수 감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어새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은 또 있다. 이상 기후 현상으로 인해 집중호우가 발생하거나 기온이 높아져 저어새의 서식 환경을 위협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인천 송도 남동유수지 저어새섬의 경우 거의 매년 홍수로 인해 둥지가 침수되어 알이나 새끼가 떠내려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으며, 2018년의 경우 섬 하단부에서 번식을 하던 둥지 50개 이상이 폭우로 인해 번식을 실패했다. 또한, 2016년도에는 폭염으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물속 산소량이 줄어들며 보툴리즘균이 내뿜는 독소에 중독돼 저어 새가 죽는 일도 발생했다.

저어새는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제205호,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생물 I급 조류이다. 다행히 최근들어 개체수가 회복되어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Red List)에서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되었다. 꾸준한 증가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4,000여 개체에 불과하여 최소생존개체군인 7,000 개체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는 꾸준히 이들의 서식지를 보전하고 무분별한 인간 활동을 제한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는 독자들께서 저어새가 살아가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육안으로 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그 아름다운 날개짓과 독특한 먹이활동을 보면 이들이 우리의 소중한 이웃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인식될 때 우리의 행동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사촌 동생의 결혼 소식

이종 사촌 동생이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릴 적 가깝게 지냈던 동생이라 그 소식이 반갑다. 형은 아직 결혼을 안 했고, 동생이 먼저 하는 결혼이다. 그래서 이모님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두 아들이 마흔이 넘은 마당에 하나라도 먼저 보낸다고 위안을 삼으신다.

원래 혼사가 맺어지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요즘은 옛날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주변에는 혼기가 들어찼는데도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하지 못하는 남녀들이 넘쳐난다. 현재 임금 수준으로 신혼 부부가 주거지를 자신의 힘으로 마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사랑하지만 짝짓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한숨이 들린다. 높은 물가에 낮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하니 서식지가 파괴되어 번식을 포기하거나, 시도조차 못하여 개체수가 줄고 있는 저어새가 오버랩된다.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룬 지천 태가 한 번 더 조화를 부려 뇌택 귀매가 되었다.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뤄 생명체가 짝지우고, 그래서 생명이 대지에 넘처나는 것이 자연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생태계가 망가지고, 자본의 횡포로 인간의 배합이 어려워진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는 지천 태도 보이지 않고 뇌택 귀매도 보이지 않는다.

저어새도 살고, 사람도 살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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