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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Feb 04. 2020

비정상의 정상화

전 정부 때  정책 슬로건이었던 “비정상의 정상화”.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비정상적인 잘못된 현상들을 바로잡고, 똑바로 되돌리겠다는 말로써 수긍이 가고 잘 만들어진 슬로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말이다. 그 당시에도, 지금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뭔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는 비정상인 것을 정상으로 바꾸겠다라는 말로 이해가 될 수 있겠으나, 한 번만 더 곱씹어 생각해보면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되었다, 비정상이 만연해있다. 비정상인인 것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Change abnormality to normality”(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다)가 아니라, “Abnormality seems to be normal”(비정상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진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어를 굉장히 못하지만 때로는, 아주 가끔씩은 영어가 좀 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때가 있다. 당연히 번역 어플의 도움을 받았다)


회사에서 사원증을 왜 패용하고 있냐고 누가 물어본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는 효과와 더불어 출, 퇴근 체크, 인쇄를 위해 복합기에 태그하는 용도 등등으로 사원증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사원증을 패용하라고 규칙을 정했다. 그러면, 그렇다면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다면 사원증을 왜 패용하고 있냐고 물어볼 것이 아니라, 사원증을 왜 패용하지 않고 있냐고 물어봐야 할 일이다. 번거로워서, 까먹어서 등등 갖가지 이유로 사원증을 패용하지 않는데, 패용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인 것이다. 패용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용하지 않는 “비정상”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정상”인 사람이 마치 “비정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그래도 그나마 이러한 경우는 서로 간에 큰 불편함을 초래하는 건 아니고, 갈등을 야기시키지는 않는다.


워라밸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정의 날” 제도를 두는 회사가 많다. 제도의 취지는 할 일이 많아 야근을 많이 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좋은 제도이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다. 시련 없이 성공이 없다. 가정의 날 일찍 퇴근을 하는 제도라면 가정의 날이 아닌 날에는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가정의 날이 아닌 날에는 퇴근을 일찍 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늦게까지 비효율적으로 야근하는 “비정상적인 야근문화”를 “저녁시간이 되면 퇴근하는 정상적인 문화”로 바꾸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야근이 잦은 비정상적인 문화”가 “야근이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고, 야근이 만연한 상황”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분들, 높은 분들의 시각에서는 제도의 취지를 감안하여 가정의 날 하루는 일찍 퇴근하더라도 야근하는 것이 정상이며 다른 날 일찍 퇴근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이해되는 모양이다. 이럴 경우 서로 간의 불만이 쌓이고 언젠가는 큰 갈등이 발생할 여지를 만들고야 만다.


그렇다고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무조건 비난하고 나무랄 일은 아닌 것 같다. 개인의 성향에 따른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 비정상이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는 현상은 조직 내에서, 사회 속에서 쉽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등병 때 맞은 사람이 병장이 되었을 때 이등병을 때리는 비정상적인 일은 군대 내에서 배운 일이고, 나 스스로가 터득한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답습되어 오고 있는 일이다. 확신컨대 작년 최고의 유행어인 “Latte is horse(라떼는 말이야)”는 사람들이 집에 혼자 있을 때  탄생하지 않았다. 조직 내에서, 집단 내에서 비정상적인 문화를 답습함으로써 탄생한 명언임을 누구나 의심하지 않는다.


과거에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비정상적인 상황을 마치 정상인 것처럼  인내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발전시켜 온 앞선 세대들의 노고를 무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마치 지금도 정상인 것처럼 여겨지길 바라는 데에는 반기를 들 수밖에 없다. 그때의 비정상적인 상황은 지금도 비정상적이다. 과거의 비정상적인 문화는 이제 시정이 되어야 된다. 조직은 이제 바뀌어야 되고, 사회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 비정상이었던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겠다는 말로 의심없이, 또 오해없이 쓰여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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