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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16. 2020

미안한 것과 고마운 것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상황에서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상황에서 쓰는 말이 가끔은 혼동되어서 쓰일 때가 있다. 내가 해야 할 인이데 피치 못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되는 상황이 대표적이 아닐까. 집안에 중요한 일이 있어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 하필 그날 중요한 회의가 잡혔다. 휴가를 취소할 수는 없기에 회사 동료에게 대신 회의에 참석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미안한 걸까 고마운 걸까?


일반적으로 미안한 상황이라고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상대방에게 상해를 입히는 상황일 것이다. 반면 고마운 상황이라고 하면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을 줬거나 경제적인 이익을 줬거나, 심리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등의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 대신 회의에 참석해준 상대방은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되었을까. 예정에 없던 일로 인해, 혹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회의에 참석하게 됨으로써 당황스럽고 기분이 나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안한 상황이 맞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상대방이 내가 집안일을 봐줄 수 있도록 도움을 줘서, 내가 안심하고 휴가를 낼 수 있게 만들어줘서, 내가 심리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서 상대방에게 고마운 상황도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라고 두 번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렇게 말했다가 돌아오는 건 이상한 눈초리일 뿐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미안하다라고만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미안한 감정과 고마운 감정이 둘 다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말 중에 무슨 생각을 통해, 무슨 심리로 인해 어떤 말을 할지 고르게 되는 것일까.


미안하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는 상대방에게 피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즉, 나로 인해 상대방에 감정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미안한 것이다. 원인과 문제는 나에게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한 결과는 나의 변화가 아니라 상대방의 심리이다. 고맙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이유는 상대방이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으로 인해 나의 감정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에 고마운 것이다.

 

미안하다=상대방의 감정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고, 고맙다=나의 감정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감정의 주체 중 어디에 무게중심이 실리느냐에 따라 입에서 나가는 말이 달라지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우리나라의 표현과 미국의 표현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안하다는 사실 상대방의 감정에 중점이 맞춰지는 것과 달리

미국의 미안하다라는 표현 방식은 나에게 중점이 맞춰져 있다. You’re sorry가 아니라 I’m sorry인 것이다. 솔직하고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한 미국인인이기에 내 감정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 타게 된 상황에서 어김없이 HELLO를 날리는 미국인들과 달리 빨리 1층까지 내려가서 단 둘이 좁은 공간에 있는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사람의 차이, 뭐 그런 차이에서 비롯된 언어습관이 아닐까.


더불어 미국인들의 고맙다도 우리나라와 조금 달라 보인다. Thank me가 아니라, Thank you이다. 고맙다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다. 미국이라곤 신혼여행 때 가 본 하와이밖에 없는 내가 미국인들의 언어습관과 심리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평을 할 순 없겠지만, 미안하다와 고맙다라는 말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상황에서 쓰이느냐 곰곰이 생각해보다 보니 감히 영어의 의미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미안하다라는 말을 주로 하는 편인 것 같다.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편이 아니기에 내 감정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에 무게중심을 싣는 편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고맙다라는 말은 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고맙다라고 말하면 나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같고, 내 중심적으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미안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고맙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마음이 편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중요하지는 않다. 사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마음만 전해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말이 편한지, 다양한 상황에서 무슨 말이 먼저 입에서 나가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일은 내가 내 중심적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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