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언제 다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을까? 올해는 어렵겠지?
지난 금요일 (11월 20일) 오전, 동네 쇼핑센터에서 평소처럼 주말을 보낼 장을 보고 있었다. 친구 S에게서 화요일 (11월 24일)에 같이 보기로 한 발레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아니 공연이 왜? S는 방금 전에 월요일 (11월 23일)부터 3주간 모든 쇼가 취소된다는 뉴스를 들었다고 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일일 확진자수가 적었던 핀란드도 어느샌가 하루 300명을 넘어 400명에 가까워지더니 결국 내려진 조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 초대권 4장을 준 발레리나 친구 E로부터 전화가 왔다. 화요일 공연 취소를 알리며, 토요일 공연으로 초대권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며, 공연을 보러 올 수 있는지 물었다. 토요일 저녁에 싸우나를 즐기는 그를 위해 토요일 저녁 공연을 피한 건데,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공연을 보러 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그는 예상대로 싸우나를 포기하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흔쾌히 공연을 보러 가라고 했다. 공연을 같이 보러 가기로 한 친구들에게 참석 여부를 확인해 E에게 3장의 표를 부탁했다.
공연 당일 발표된 461명이라는 기록적인 전날 하루 확진자수에 놀란 그가 공연을 꼭 가야겠냐며 우려를 표했다. 애써 새로 표를 마련해준 E의 노고, 아이들로부터의 자유시간, 공연을 보고 싶은 마음 등으로 공연 관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대사관을 통해 구입한 KF94 마스크 (대사관은 고맙게도 한번 더 추가 구매를 추진해주었다.)를 잘 착용하고 손소독제를 적절히 사용하며 조심해서 공연을 관람하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S도 같은 이유로 관람을 망설였지만, 우린 예정대로 공연을 보았다.
코로나 이후 공연장 운영에 변화가 있었다. 지난 9월, 고맙게도 S가 나를 봄에 취소된 공연표로 예약한 공연에 초대했다. 봄에 공연표를 하나 예약한 S에게 핀란드 국립발레단은 혼란 속에 환불이 되지 않은 불편함을 보상하듯 두장의 표를 제공했다. 중간 휴식 없는 1시간 30분짜리 현대 발레 공연으로 좌석은 한 자리씩 띄엄띄엄 배정되며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는 S의 설명에 사람이 많은 곳을 꺼려하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공연 당일 S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입구에서 표를 확인하는 탓에 건물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S를 기다려야 했다. 이전에는 공연홀 안으로 들어갈 때 표를 확인했다. 착석은 변함없었지만, 공연을 마친 후 자리를 뜰 때는 달랐다. 각각의 문을 지키던 직원의 지시에 따라 한 줄씩 차례로 자리를 떠야 했다. 사람들이 동시에 몰리는 것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물품보관소가 한산해서 편했다. 맡겨놓은 소지품을 찾기 위해 내민 번호표는 직원에게 건네주지 않고 한쪽에 비치된 바구니에 넣어야 했다.
마지막 공연은 2막으로 구성돼 중간 휴식이 있었는데, 음료와 간단한 디저트를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9월에 관람한 공연(관객 반 정도만 마스크 착용)과 달리 대부분의 관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다과를 즐기느라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다과를 즐기는 사람들이 내게는 상당히 위태롭게 보였다. 공연장 한편에 커다란 생수통과 일회용 컵으로 제공되던 물은 1인용 생수병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지막 공연이라고 했지만,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한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누군가에는 갑작스러운 마지막 무대였다. 커튼콜이 끝날 때가 되자 관계자 한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관계자는 1995년부터 핀란드 국립발레단에서 춤추던 발레리나가 은퇴를 한다며, 발레리나 한 명을 무대 앞으로 불러 세웠다. 비중이 작은 역할로 평소 관객의 박수를 독차지할 기회가 없었을 것 같은 그녀는 상당히 쑥스러워했다. 공연 후 주인공이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즐기는 것과는 달랐다. 어쩌면 은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 때문이었을지도... 공연 뒤 E에게 공연 취소로 갑작스러운 마지막 무대가 은퇴하는 발레리나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을 것 같다고 하자, E는 봄에 코로나 사태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무대도 없이 쓸쓸히 발레단을 떠난 동료들도 있다고 했다.
핀란드 국립발레단은 가을 시즌부터 조심스레 공연을 이어왔다. 관객수를 줄였지만, 관객을 50명으로 제한한 이웃나라 스웨덴의 발레단보다는 훨씬 많은 관객을 수용하고 있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오케스트라를 두 그룹으로 나눈 탓에 공연 시 부족한 부분은 녹음으로 대체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한 연주자의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해당 그룹 전체가 자가격리에 들어가기도 했다. 다행히 사전에 오케스트라를 두 그룹으로 나눈 덕에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의 부재를 막을 수 있었다. 핀란드 국립발레단만 공연이 취소된 것은 아니다. 최근 코로나 확산세로 인해 다시 공연을 접은 곳이 대다수다.
글을 마치며..
코로나 사태로 예년보다 공연을 볼 기회가 많이 줄었는데, 운 좋게 마지막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기록적인 확진자수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공연인 탓에, 누군가의 은퇴 공연인 탓에, 공연장은 예상보다 붐볐다. 우리처럼 취소된 공연표를 바꾼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동료의 은퇴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공연이 인간의 이중성, 광기 등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춘 Jekyll & Hyde 여서 여운이 상당했는데, 공연을 둘러싼 상황들이 불편한 마음을 더했다. 연이은 상당한 일일 확진자수에 26일에 추가적인 제한 조치를 발표한다고 하는데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