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Apr 05. 2023

다른 계절을 사는 우리 가족

지금이 내겐 아직 겨울인데, 아들과 딸 그리고 그에겐 봄인가 보다.

배경 이미지: 4월 2일,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동네 산책 길에 찍은 사진이다. 도대체 왜 봄이라는지...


 

아들의 한글 공부를 봐주다가 계절 단어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나왔다. 아들에게 지금 계절이 머냐고 물었다. 망설임 없는 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밖에 아직 눈이 쌓여있는데도라고 되물었지만, 망설임 없이 봄이라 답하는 아들... 


봄이라면 자고로 연둣빛 새순도 보이고 꽃도 보여야 하는데, 여긴 눈을 뚫고 나오는 꽃만 어쩌다 보일뿐, 봄꽃은 보이지도 않는데... 게다가 사방천지 눈이 쌓여있고 얼음도 이곳저곳 보이는데 어찌 봄을 논하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지금 계절이 봄이란다. 영하의 날씨인데 왜 봄이냐고 되물으니 대충 봄이란다. 봄날은 따스한 햇빛을 포함해야 하지 않나? 한국인인 나는 아직 봄을 기다리며 겨울에 살고 있는데, 핀란드인은 4월이나 되었으니 날씨가 어떻든 간에 봄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것 같다. 


진지하게 우리 집 핀란드 사람들에게 지금이 봄인 이유를 물었다. 아들은 날이 길어졌고 달력상 봄이니까 봄이라 답했다. 딸도 4월이니 봄이라 답했다. 근데 왜 아직도 겨울 옷을 입냐 물으니, 딸이 오히려 그럼 어떤 옷을 입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추위에 오돌돌 떨며 아플 순 없으니 옷은 잘 챙겨 입어야 한다는 딸이 대답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는 계절을 정의하기 나름인데 달력상으론 봄이 3, 4, 5월이니까 4월인 지금을 봄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아니 지금도 봄 같지 않은데 달력상 3월도 봄으로 친다고? 이건 핀란드 사람들의 정신 승리가 아닌가? 계절을 정의하는 다른 방법은 기온이라고 설명하던 그가 기준을 정확히 잘 모르겠다 했다. 아마도 영상의 기온이 기준이 아니겠냐며 그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래 핀란드 사람들에겐 지금이 봄인가 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인 나에겐 지금은 확실히 겨울이다. 내가 봄으로 느낄 만한 그 따스함과 연둣빛 새순들이 눈에 띄는 그날이, 그 봄이 곧 왔으면 좋겠다. 올해 유독 봄이 안 온다고 투덜대는 내 모습을 그만 마주하고 싶다. 


봄아~ 어디 갔니? 어서 오렴!



미끄러워서 걷기 불편하다고 겨울 내내 가지 않았던 산책 코스를 참 오랜만에 가봤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