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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ep 13. 2023

평범하지만 조금 특별한 일요일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잠깐 만나도, 예의 차리지 않아도...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절친 E의 딸은 지난 8월 두 돌이 되었다. 다양한 음식 알레르기가 있어 꽤 고생했는데, 다행히 호전되고 있었다. 계란에도 알레르기 반응이 상당했는데, 의사가 나아지고 있으니 익숙해지도록 조금씩 먹여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E의 딸은 계란의 맛을 좋아하지 않는지 계란 먹는 걸 꺼렸다.


아들이 아침에 비위가 약해 계란을 꺼려하는 걸 경험한 나는 E의 딸의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내가 아들에게 해줬듯이 다른 재료들로 계란 맛을 상쇄시키도록 전을 해주라고 권했다. 그런데 E가 이것저것 번거롭게 시도하기보단 내가 아들에게 해주는 생선전을 나눠주는 게 편할 것 같았다. 호기롭게 다음에 전을 만들면 가져다주겠다 했다.


그렇게 내 맘 속에 절친에 대한 숙제가 생겼는데, 이래저래 미루고 있었다. 지난 토요일 갑자기 숙제를 해치우고 싶어졌다. 아이들을 재우고 생선전을 부쳤다. 두 돌 지난 아기가 먹을 거라 간을 좀 약하게 했는데, 혹시 모르니 맛은 봐야겠다 싶어 하나를 먹어봤다. 


바로 부친 따끈한 전은 너무 맛있었다. 하나를 더 입에 집어넣으니 맥주가 당겼다. 맥주를 마시니 짭조름한 게 당겨 때마침 집에 있던 프링글스를 뜯었다. 그러니 맥주가 더 당겨서 한 캔을 더 땄다. 에효... 맛보기 전 한입으로 시작한 한밤 중 흡입이라니... 맥주 두 캔으로 끝나 다행이었다.


 일요일 아침 E에게 전화를 걸어 전날 만든 생선전을 가져다 주기로 했다. 잠시 만나는 거지만 오랜만에 E를 만난다는 생각에 신났다. 그래서일까? 생선전을 식탁에 두고 집을 나서서 다시 집에 들러야 했다. 생선전을 챙겨 딸과 함께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E를 만났다.


E와 함께 수다를 즐기다 근처 쇼핑몰에 장 보러 갔다. 쇼핑몰에 들어서자 E가 생선전을 가져다준 게 고마웠던지 머라도 마시자 하는데, 굳이 무얼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난 커피나 차는 별로라 물 아니면 술을 마시는데 오전이라 딱히 당기지 않았다. 그냥 넘어가자고 하고 함께 각자의 장을 보러 마트로 향했다.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하니 E는 장보기를 조금 서둘렀다. 내 장보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시야에서 사라진 E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아이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가라 했지만, E는 얼굴 보고 간다며 내 위치를 물었다. 결국 E와 다시 잠깐 만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되새겨보니... 그냥, 특별할 거 없는 일상인데, E와의 짧지만 담백한 만남이 좋았다. 서로에게 체면치레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관계라 참 좋다. 해외살이는 머무는 인연보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더 많은데 그래도 그 와중에 E를 건졌으니 행운이다.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잠깐 만나도, 예의 차리지 않아도 편한 친구가 있어 마음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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