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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ep 14. 2023

비 오는 날 새똥 치우기

비가 치워주겠지! vs. 물총으로 치울까?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23. 9. 13


아들과 딸이 등교가 9시 5분까지인 수요일은 둘 중에 하나는 등교가 8시 15분까지인 다른 날과 달리 상대적으로 여유롭다. 그러나 전날 아들이 한글 수업 복습을 아침으로 미룬 탓에 조금은 분주한 아침이었다. 아침을 준비하는데 딸이 창밖에 저게 머냐고 물었다. 창밖을 봤지만 특별한 게 없었다. 바쁜 아침 내게 저게 머냐는 딸이 조금 성가시다 싶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무얼 묻는지 되물었다. 식탁에서 일어나 딸이 창 근처로 다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부엌 프렌치 발코니의 울타리라 할 수 있는 유리에 상당히 길게 흘러내린 새똥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을 챙기는 게 우선이라 새똥은 잠시 잊기로 했다. 


다행히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으니, 비가 새똥을 씻겨주길 바랐다. 새똥을 씻겨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비라니... 아침을 챙기느라 서있을 땐 눈에 띄지 않던 새똥이 식탁에 앉으니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이래서 딸이 그렇게 거슬려했구나 싶었다. 일정 때문에 아침을 컴퓨터 앞에서 먹은 그는 나중에야 새똥을 발견했고, 딸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새총으로 물을 쏴서 치울까 고민하는 그에게 지나가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 이따가 내릴 비가 치워주길 기다려보자고 제안했다. 그가 내 제안에 반신반의했지만, 귀찮았는지 딱히 새똥을 치우려 하진 않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비가 새똥을 치우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투덜댔다. 새똥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고, 그의 투덜거림도 듣고 싶지 않아 내가 치워야겠다 싶었다. 비가 내려 새똥이 물기를 먹어 치우는 게 수월할 것 같았다. 손이 닿지 않는 위치라 막대기에 수분이 말라버린 물티슈를 묶어 새똥을 긁어냈다. 일부는 티슈에 묻어났고, 일부는 유리에 뭉개졌다. 최대한 물티슈로 새똥을 치우고 나머지는 비가 해결해 주려니 했는데...


그가 아들의 물총을 가져와 유리에 붙어 있는 새똥을 향해 쏘아댔다. 그가 물총을 쏘아대는 모습을 보자 차라리 물을 부어버리는 게 났겠다 싶었다. 몇 번 물을 유리에 부어대고 나니 눈에 거슬리던 새똥이 사라졌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어 비를 조금 맞긴 했지만, 우리가 뿌린 물을 지나가는 사람이 맞을 염려가 적으니 안심이 되었다. 시시콜콜한 일상이 그와 함께라서 유쾌하다. 그래서 그와 행복하게 살고 있고, 그와 함께 하는 행복한 내일도 꿈꾸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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