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나무 이름을 핀란드어로 거의 다 아니, 영어로도 알아보자!
배경이미지: 2021년 7월 31일, 나무로 지어진 빌라(Annala) 근처 숲길 산책 중인 우리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도 하고 놀기도 한다. 아침과 저녁은 용케 잘 챙겨 먹는데, 점심은 잘 깜빡해서 1시나 2시에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론 점심 먹는 걸 깜빡할 때도 있다. 이런 집돌이와 함께 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집순이가 되었다. 집돌이와 집순이는 아이들이 집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날엔 되도록이면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려 애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누군가 빠질 때도 있다. 목적이 있는 외출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신선한 공기를 음미하기 위한 동네산책이다. 날씨가 좋을 때는 근처 슈퍼에서 크루아상이나 까렐리안 삐라까(밥파이)를 사서 동네 어딘가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소풍을 즐기기도 한다. 우리 동네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 옆이다. 근처 새들을 위한 자연보호구역도 있고, 헬싱키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옆이기도 해서 아기자기한 산책코스가 많다. 덕분에 동네산책이 다채롭다.
나무로 지어진 단독주택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길을 지나 여름 텃밭을 돌아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아하는 암석언덕을 지나 조랑말을 살펴보기도 하고, 헬싱키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지어진 빌라(Annala) 앞 예쁘게 꾸며진 정원의 꽃을 구경하기도 한다. 바닷가를 지나 하구를 가로지르는 현수교이자 인도교인 다리를 건너 기술박물관 쪽으로 향하면 예전의 수력발전소의 건물과 함께 인공폭포를 볼 수 있다. 인도교를 건너 박물관 반대쪽으로 향하면 작은 숲을 지나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오두막에 갈 수 있다. 좀 오래 걸을 생각이라면 나무 널빤지가 깔린 산책로를 걸어 작은 섬에 갈 수도 있다. 그 섬 옆 아주 작은 섬까지도 걸어갈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무리다 싶어 겨울에만 간다. 겨울에 바다가 얼면 바다를 가로질러 걸어갈 수 있어 아주 작은 섬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단조롭지만, 아이들과 함께 해서 늘 새롭고 행복한 산책길에 언젠가부터 그가 눈에 띄는 나무 이름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이라서 아님 천상 교육자라서 그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장한 공부를 잘 시킨다. 게다가 존경스럽게 끈기 있고 꾸준하다. 그는 어느 날 문득 산책하다 눈에 띄는 다양한 나무를 보며 요즘 사람들이 식물 이름을 잘 모르는데 알면 유용하겠다 생각했고, 그 생각을 꾸준하게 실천했다. 아이들과 산책하며 마주하는 나무나 풀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반복해서 알려줬다. 아이들이 주변 식물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을 즈음부턴 보이는 식물의 이름을 묻기 시작했다. 둘이다 보니 때론 경쟁이 과열되기도 했다. 그러자 둘이 번갈아 답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경쟁을 적당히 부추겨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지나친 경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덕택에 딸은 나무 이름을 배우는 유치원 현장학습에서 나무 이름을 이미 다 알고 있어 칭찬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동네산책에서 눈에 띄는 식물 이름을 다 숙지하면 끝날까 했던 공부는 핀란드어에서 영어까지 이어졌다. 아이들은 이미 배운 나무 이름을 영어로도 배웠다. 그 뒤엔 눈에 보이는 나무 이름을 핀란드어와 영어로 맞추는 게임이 이어졌다. 그는 아이가 나무 이름을 착각하면 잘못을 바로 잡아주고 그 차이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식물 이름 맞추기 경쟁을 즐겼다. 산책 때 자주 놀이처럼 식물 이름 공부를 시켰지만, 학교에서 있던 일을 묻기도 하고 저녁거리와 같은 일상에 대한 대화도 우리의 산책을 채웠다. 아이들은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 조르거나 다음번 외출은 동네산책 말고 좀 더 멀리 가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산책이 일상이듯 그 산책 안에 스며든 대화가 공부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의 일부라 여길 것이다. 공부인 듯 아닌 듯, 배움을 자연스럽게 일상에 버무리는 그의 재능을 존경한다. 그가 내게 한국어로도 식물 이름을 알려주라 제안했지만, 나는 지식이 모자라 일지감치 포기했다. 부모가 아는 게 많아야 아이들에게 놀이처럼 지식전달도 해줄 수 있는데, 우리에겐 그가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