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봄에 비로본따를 하겠다면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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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쯤 인터폰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인터폰 화면에 스크림 가면을 쓴 사람과 몇 명의 사람이 보였다. 할로윈이라고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 같았다. 다소 무례하다는 생각에 인터폰을 응대조차 하지 않았다. 핀란드도 한국처럼 할로윈을 챙기지 않던 나라인데, 언젠가부터 슬금슬금 할로윈을 챙기는 문화가 생겼다. 꾸준한 마케팅의 노력이 조금씩 조금씩 시장을 키워놓고 있다. 아이들에겐 그저 재미있는 할로윈 의상을 입을 수 있는 계기라 여겨 그러려니 했는데, 사탕 얻으러 다니는 것까진 그다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핀란드는 봄에 아이들이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전통인 '비르본따(Virvonta)'가 있다. 할로윈에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것과 비슷하지만, 아이들이 이웃에게 행운을 빌어주며 스스로(?) 장식한 버드나뭇가지를 주고 대가로 사탕을 받는 것이다. 이미 어여쁜 전통이 있는데, 굳이 상업성에 휘말려 사탕 나눠주기를 유행시키는데 동참하고 싶진 않다. 게다가 저녁 8시는 미리 약속한 손님이 아니라면 불쑥 초인종을 누르는 게 실례인 시간이다. 그래서일까? 다행히 초인종은 딱 한 번만 울렸다.
생각해 보니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작년에는 건물 초인종이 아니고 현관문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 초인종을 누르는 건 대체로 이웃이기에 문을 열고 확인했는데, 아들과 같은 반의 여자아이, 그 아이의 동생, 그리고 그 여자아이의 친구로 보이는 여자아이 2명이 있었다. 할로윈이라고 사탕을 얻으러 다니고 있었다. 비르본따엔 혹시나 찾아올 귀여운 방문객들을 위해 사탕을 미리 준비해 두지만, 할로윈까진 그러지 않기에 준비된 사탕은 없었다. 꼭 주고 싶다면 내가 숨겨놓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면 되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 그냥 돌려보냈다. 올해도 혹시 또 그 아이들이었을까? 아니었길...
그나저나 작년에 그 아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을까? 평소에 마주쳐도 인사도 안 하는 남매가 할로윈이니 사탕 달라고 찾아오다니... 아들하고도 서로 아는 척도 안 하면서... 같은 아파트 산지 5~6년은 족히 되는데... 초기에 나는 그 아이들이나 그 부모와 마주치면 최소한 눈인사라도 건넸었다. 그런데 반응이 없어 나도 아는 척하기를 포기한 이웃 아닌 이웃이다. 예전에 세탁실에서 마주쳤을 때 건조실 사용을 양보해 달라던 그 아이들의 엄마에게 나는 아파트 곳곳에 있는 건조실의 위치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엄마는 그때만 잠깐 아는 척을 하더니 그 뒤로 다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쳤다. 아이들도 엄마처럼 행동해서 마주치면 달갑지 않은데, 왜 굳이 사탕 몇 개 얻어보자고 우리 집에 찾아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