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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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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y 01. 2019

인생은 갑작스럽게 끝날 수도 있다.

인생수업 by W: 잠시 떨어져 있을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남기자.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어쩌다 알게 된 W는 나보다 나이가 10살 많다. 업무상 해외출장이 상당히 많은 그녀와 수다 중에 뇌리에 새겨진 그녀의 인생 조언이 하나 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매우 희미하지만, 문맥상, 아주 드물게 가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과의 부딪힘에 대한 불편을 언급했던 것 같다. W는 어떠한 상황이던지, 한국을 떠나기 직전 즈음에는 부모님에게 화를 절대 내지 말고 좋은 모습을 남기라고 충고했다.


해외출장이 잦아 비행기를 자주 타는 W는 어느 날 뜬금없이 출장 중에 자신이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가족과 보낸 마지막 순간이 화목하지 않다면 미치도록 후회될 것 같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남아있는 가족에게는 함께한 마지막 순간이 평생 상처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생겼다. 그 후론 W는 출장을 가기 전 아이들이 화를 부르는 어떠한 행동을 해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부모님은 더더욱 연세가 있으시니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드물게 뵐 때마다 듣게 되는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염려와 억지는 짜증을 유발하지만 적어도 헤어지기 전에는 몰려드는 짜증을 다 삼키고 웃어드리려 무진장 애를 쓴다. 그게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보내는 시간일지도...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 때문에 평생 마음 아파할 수 있으니까.


W의 조언은 마치 누구에게 뒤통수를 가격 당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자주 잊고 산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하니까 이해해줄 테니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남에게는 보이지 않을 법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못난 모습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모습이 될 수도 있다니... 마음에 새겨두고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는 조언이다.


어느 날인가 아들이 벨을 여러 번 누르고는 집으로 올라오지 않아 인터폰으로 언성을 높인 적이 있다. 그 후, 아들은 집에 바로 올라오지 않고 놓고 온 가방을 가지러 학교에 갔다 오느라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이 나타나지 않아 잠깐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혹시 화를 내던 나의 모습이 아들에게 한동안 엄마의 마지막 모습으로 남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후회를 하기도 했다. 참, 쓸데없는 걱정을 다 했다. 아들은 돌아왔고, 잠깐의 걱정과 후회는 뒤로한 채 아들을 혼냈다. 곧바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W의 조언이 마음에 남아, 아이를 대할 때나, 부모님과 통화할 때 부정적인 모습으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가끔 그러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러고 나면 마음이 참 씁쓸해진다. 그래서 그 씁쓸함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조심하고, 바로 만회하려고 애쓴다. 덕택에 특히 아이들에게 자기반성과 '미안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소중한 삶의 지혜를 W에게 배웠다. W의 조언은 혹시 얻게 될지 모를 다른 이의 인생 지혜를 위해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가지게 했다. 고마워요! W, 나의 인생 수업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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