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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수 Apr 30. 2024

결국 하늘이 보여야 한다

책가도를 그리는 중입니다.

기분도 꿀꿀하고, 조금은 우울한 하루입니다. 


내가 소속하여 활동 중인 서울교대채색화연구회 모임은 매주 하루 서울교대 사향교정 채색화 강의실에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 학기 욕심을 내어 세 개 혹은 네 개의 작품을 그리려 하는데요. 그중 하나가 책가도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646679&cid=59560&categoryId=59560

책가도는 학문을 사랑하고 권장했던 왕의 바람, 선비들의 단아한 삶, 부자들의 허영과 위세, 양반들의 출세를 향한 염원, 백성들의 무탈하고 행복한 일상에 대한 소박한 욕망이 모두 담겨있는 그림이라 합니다. 한편 조선시대 정조임금은 어좌 뒤에 전통적으로 세웠던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그 대신 책을 그린 책가도 병품을 세웠다니 당시 정조의 책사랑과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면모를 느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위 링크의 리움 미술관에는 호피장막 뒤의 책가도가 있으니 럭셔리한 서재를 가지고 싶었던 조선후기 사람들의 욕망이 그대로 보여 내 안의 꿈틀거리는 욕망과 오버랲 되면서 절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우울한 나의 하루를 이야기를 하려다가, 잠시 이야기가 딴 길로 새었네요.


서울교대채색화연구회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고심하다가 책가도가 딱 떠올랐어요. 어리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두 아들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마음에, 거침없고 커다란 꿈을 무럭무럭 키우라고 꿈과 희망에 관한 두 개의 그림을 그려 준 적이 있었거든요. 최근 그 그림을 다시 보면서 이제 성장한 두 아들을 위해 책가도를 그려 주기로 한 거죠.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나이라 떠오른 주제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내 눈에는, 그리고 내 마음에는 전통적인 책가도 그림은 하나같이 답답해 보였어요. 무언가 탁 트인 그 어떤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결국 하늘이었어요. 하늘을 책가도의 중심에 떡하니 그려 놓으니 그제야 마음이 시원스러웠습니다. 내가 몇 달을 주물럭 거리고, 또 평생을 내 그림으로 안고 갈 그림인데 내가 답답해 보이고 마음에 거슬린다면 그림을 계속 이어나갈 수 없었죠. 무조건 시원스레 하늘을 가운데 배치합니다. 게다가 책꽂이를 양쪽 측면에 배치했고 하늘은 중심에 배치했어요. 이미 그것으로도 이 그림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아! 나는 늘 하늘을 그리워하는구나!' 


책가도의 중심에 아주 크게 하늘을 배치하면서 나는 내가 하늘을 무척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 바라본 창대한 밤하늘 그리고 푸른 하늘!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눈앞의 넓은 화폭을 가득 메웠던 그 하늘! 검은 구름이 무섭게 밀려오기도 하고 너무 눈부셔 손으로 햇살을 가려야 하기도 했던, 날마다 새롭던 그 하늘을 나는 늘 사랑했고 늘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대학시절 배낭 메고 국토종주팀에 합류하여 지리산구간을 걸을 때 하늘은 땅과 함께 늘 내가 바라본 세계의 절반을 채웠죠. 신림동 하숙촌 골방에서도 나는 늘 하늘을 그리워했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네모 화폭을 바라보며 나는 늘 어떻게 하늘을 담아낼까 고심했어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책가도를 그리면서도 책 보다 하늘이 먼저였습니다. 두 아들에게 지혜의 도서관을 한아름 그려 주어야 할 텐데 결국 지혜의 도서관을 양쪽으로 밀어 두고 넓고 높은 하늘을 또 그려 줍니다. 


뭐든 내가 사랑하는 것이 우선인가 봅니다. 두 아들을 위해 그려 준다는 책가도인데 내가 사랑하는 하늘부터 그렸습니다. 어린시절 나와 매 순간 함께하던 그 푸르고 넓고 높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문명과 문화의 미명아래 어쩌면 늘 나는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조선사람들은 하늘과 늘 함께 했기에 책만 잔뜩 그리고 그림은 하늘을 배경으로 걸어 두기만 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반드시 하늘을 그려야 겠습니다. 부족한 하늘보기를 그림에라도 우겨 넣어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책가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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