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ka Sep 24. 2020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5. Alpha to Remember -(1)

테이블 위의 컵에 담긴 커피가 흔들린다. 화장실 변기 안의 물이 흔들린다. 엘리베이터가 흔들린다. 무슨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바다 위에 있기 때문에 조금씩은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잔잔하고 평화로운 바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지만 정말 만에 하나의 일에 우리는 항상 준비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거의 모든 크루즈 라인에서 ‘알파’는 의료진을 긴급 요청하는 구호로 통한다. 우리에게는 몇 가지 코드 워드가 있는데, 승객의 수가 수천명이나 되는 배 안에서 갑자기 “불이야” 라거나 “대피하세요” 라는 방송이 나온다면 그 혼란과 혼동을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들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요약해서 도움을 요청 한다.

예를들면 “브라보 브라보 브라보(Bravo)” 라는 구호가 들린다면 이건 불이 났다는 말이다. 그럼 브라보 팀이 출동 한다. 브라보 팀은 소방 훈련을 끊임 없이 받은 고수 들로, 프로 소방관이 없는 배 안에서 불이 났을 경우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소수 정예의 팀이다.

나는 간호원도 아니고 의료진들로 구성된 알파팀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알파 상황에 불려간 일이 딱 세 번 있었다. 두번은 오키나와 해상에서, 한번은 제주도 해상에서. 상황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두번은 헬리콥터로, 한번은 작은 구명정으로 손님을 우리 크루즈선에서 육지 에 있는 병원까지 이송했었다.

알파 팀이라고 해서 송중기 처럼 잘생기거나 송혜교 처럼 예쁜 스태프들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지만, 태양의 후예들, 그들 못지 않게 우리는 진지하고 신속하게 대처 한다.


첫번째 알파 사건은 배가 출항 하고 직후에 일어 난 일이었다. 가장 가까운 육지의 연락망을 동원 해야 했는데 오키나와에 있는 병원이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나왔다. 나는 일본의 그 병원에 연락을 취하고 구급 헬기를 부르는 역할을 맡았다.  

환자는 60대 후반 할아버지. 욕실에서 미끄러져서 머리를 심하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출혈이 너무 심해 우리는 구급 헬기를 부르기로 한 것이다. 모든 알파팀이 동원되어 상황을 읽어 갔다. 환자는 운반용 침대 위에서 간호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간호사는 끊임없이 할아버지의 귀에 속삭이며 응원의 말을 전달한다. “다 왔어요, 이제 옮겨 지실 거예요,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순식간에 도착한 헬기가 해상을 맴돌다가 우리 배의 헬리콥터 선착장에 착륙 했다. 우리는 모두 구명 조끼를 입고 바람이 심하게 부는 헬리데크로 나간다. 헬리콥터가 착륙 할 때는 소리도 바람도 아주 거셌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일본 의료진이 재빠르게 환자를 운반하고 나는 중간중간에서 통역이 필요하면 바로바로 그쪽에 대화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마디를 통역하지 않으면 안됐는데 나는 갑자기 울컥했다. 우리 팀의 간호원이 한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였다. “이 할아버지,에이즈 환자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환자의 눈시울이 붉어지도록 한 간호원의 따뜻한 손길이 너무 위대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알고서도 어쩌면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손을 꼭 잡아주고 귓가에 말을 해 주며 끝까지 웃는 얼굴로 보낼 수가 있을까. 정말 프로는 이런 것이구나..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지는 하루였다.

노르웨이 출신 Captain Charles, 코스타리카 출신 GSM Federico. 선장님은 항상 노르웨이의 시골 출신인 내가 선장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뭐든지 할수 있다고


이전 04화 나의 바다, 나의 크루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