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인생은 참 다양한 선택의 길이 있다. 짜장면과 짬뽕 중 좋아하는 것을 고른다면 그저 그때 취향 따라 선택하면 그만이다. 이런 유의 선택은 더 가치 있는 것의 경중을 따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것을 해도 좋고 저것을 해도 좋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가치 있는 선택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평일에 엄마 집에 가야 하면 버스를 타야 했다. 먼 거리를 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타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아이의 칭얼거림을 그 좁은 공간에서 다 받아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엄마 집에 가는 일은 생각뿐, 자주 포기하곤 했다. 엄마도 애들 데리고 먼 데서 버스 타고 오면 힘드니 그냥 집에 있으라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 집에는 잘 안 가도 내가 가고 싶은 모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잘 가곤 했다. 나 좋아하는 모임에는 가고 엄마에게는 핑계를 대며 안 가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진 어느 날. 모임에 가려고 하다가 엄마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날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급작스레 행선지를 바꾼 나는 아이들과 버스 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뜻밖의 방문에 놀란 엄마는 안 그래도 된다고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모임에 갈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셨던 엄마는 힘들게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와 버스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를 배웅해 주셨다. 다음에는 그냥 남편 차 타고 편하게 오라고 하시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엄마.
오늘따라 엄마가 버스 정류장에 나를 데려다주던 그날 기억이 난다. 특별하지도 않던 그날의 기억이 왜 그렇게 아련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날로 돌아가 보면 모임과 엄마를 두고 경중을 따지던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했는지 몰랐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발길을 옮겼을 뿐.
엄마와 시간을 보낸 그날의 나의 선택은 지금 돌아보니 '참 잘했다'이다. 이처럼 세상의 많은 선택은 시간이 지나 보아야 그 가치가 드러난다. 어떤 선택은 후회가 되고 어떤 선택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선택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종종 실패를 두려워하며 선택을 주저한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후회와 안도를 오가며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될 뿐.
하지만 내가 맞이할 일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으로 선택 결정하기를 미룬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노먼 록웰 (1894∼1978) 은 미국에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라는 잡지의 일러스트레이터로 40여 년 일을 하며 4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림으로 표현해낸 일상은 오늘날까지 꾸준히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별히 <고공 다이빙대 위의 소년>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자신의 사무실에 걸어놓고 싶어서 산 그의 애장품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림을 산 이유를 설명한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백 번 다이빙 보드 위로 올라간다. 뛰어내릴 것이냐 저 심연으로부터 물러설 것이냐가 우리에게 닥친 일이다. 내게는 이 그림이 내가 감독을 맡기로 결심하기 전의 영화 하나하나를 대변한다. 그래 이 영화의 감독 일을 맡아야지 하기 바로 전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인 것이다. "
- 이주헌, <리더의 명화 수업> 중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찍기로 결심하기까지 다이빙 보드 위의 소년처럼 망설이느라 11년이 걸렸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았으나 그것을 선택하여 실행하기를 두려워 미뤄 두었던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는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결과"라고 했다.
여러분이 80세가 되어 각자의 인생을 조용히 되돌아볼 때, 여러분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결국 우리 인생은 우리가 선택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재능을 어떤 목적을 위해 쓸 것인가는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 재능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사회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으며, 국가를 위해 혹은 전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이 선택의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게 될 선택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질 것이며, 결국은 그 선택들이 모여 ‘나’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만들어 가십시오. 행운을 빕니다.
– 2010년 5월, 프린스턴 대학 졸업식 축하 연설
두렵고 힘든 일일수록 선택하여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일들이 우리 앞에 장애물처럼 놓여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나이와 여러 환경적 요인 등이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장애물 때문에 실행을 미루다 가는 내가 가진 재능이 발휘될 때를 놓칠 수도 있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는 자에게 펼쳐질 미래를 응원한다. 당신은 아직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