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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Mar 25. 2022

마카롱 산을 넘다  

일상 에세이

우리 집 막내딸은 간식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그녀가 사랑하는 간식은 주로 빵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자꾸 마카롱을 먹고 싶다고. 그때만 해도 집 근처에 마카롱을 파는 곳이 없어 사려면 멀리까지 가야 하니 영 부담스러웠다. 코로나 덕에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재료를 사 줄 테니 네가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막내는 도서관에서 마카롱 책만 빌려보며 과연 자기가 만들 수 있을까 한참 고민을 했다. 자신이 없었던지 처음에는 머랭 쿠키로 연습을 했다. 머랭 쿠키는 재료와 만드는 방법이 간단하다. 설탕과 계란. 거기에 초코 가루 조금 있으면 초코 머랭 쿠키가 된다. 계란 흰자를 분리해 기계로 휘젓기만 하면 단단한 뿔 모양의 머랭이 완성된다. 이것에 설탕을 넣어 잘 섞고 그 반죽을 짤주머니로 옮긴 후, 테프론 시트(오븐용 시트지) 위에 모양을 만들어 구우면 머랭 쿠키가 된다. 머랭이 잘 모양을 갖춘 채 유지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달고나 같이 오븐 팬에 넓게 퍼져서 구워져 나왔다. 그럼 어떠리. 모양이 좀 아쉬웠을 뿐, 맛은 그 정도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막내가 만들어 주는 머랭 쿠키의 달콤함에 젖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내는 드디어 마카롱을 만들겠다고 결심을 했는지 재료를 사달라고 했다. 처음엔 아몬드가루랑 슈가파우더로 조촐하게 시작했으나, 초콜릿, 버터, 액상 색소 등 갈수록 살 것이 점점  늘어났다. 바닐라 익스트랙도 필요하다고 해서 1개만 사면 배송비가 더 비싸서 3개를 함께 주문하여 냉장고에 쌓아놓고. 원래 가지고 있던 머랭 휘핑기는 휘핑하는 부분이 한 개라 시간이 많이 걸려 두 개로 휘저을 수 있는 기계도 들여놓았다.


마카롱은 모양 부분마다 불리는 이름이 있다. 가운데 속은 필링이라 부르고. 위아래를 샌드위치 빵처럼 덮는 부분을 '코크', '코크' 밑에 나오는 예쁜 프릴 모양의 장식을 '삐에'라고 부른다. 계란 흰자와 설탕으로 만드는 머랭의 종류는 그  만드는 법에 따라 이탈리안 머랭, 스위스 머랭, 프렌치 머랭 등 다양하다. 거기에 아몬드 가루, 색소, 소금을 넣어 섞고 짤주머니에 넣어 테프론 시트에 예쁘게 짜 주면 된다. 이렇게 말하면 마카롱, 별거 있나. 계란 흰자 휘저어 가루 섞어 구우면 되겠네. 하고 쉽게 생각이 든다. 나도 그랬다.


일찍 일어나지도 않던 아이가 아침부터 일어나 마카롱 만들 재료를 일일이 저울에 계량해서 준비했다. 계란을 깨고 머랭을 만들며 아몬드 가루와 색소를 넣어 섞는다. 이렇게 섞으며 농도를 맞추는 과정을 마카로니 주라고 하는데 이것도 너무 되거나 질척하지 않도록 조절을 잘해야 한다. 이어서 반죽을 짤주머니에 넣어 테프론 시트에 동그란 모양으로 짠다. 오븐에 넣어 건조를 시킨 후, 적정 온도를 찾아가며 굽기를 일주일. 어떤 날은 굽는 시간을, 어떤 날은 온도를 조정해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건조 시간을 조정해보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설탕 가루 입자를 더 부드럽게 해 보기도 했다.


결과는 책이나 가게에서 보던 마카롱 모양과 조금씩 달랐다. 어떤 날은 무엇이 문제인지 코크가 납작하게 붙어 버렸고, 어떤 날은 비가 안 와서 갈라진 땅처럼 코크가 사방으로 다 갈라져 있었다. 게다가 삐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나오는 건지. 아이가 아무리 정성 들여 반죽을 하고 건조하고 구워도 삐에라는 녀석은 나올 줄 모르고. 엄마가 아는 게 없으니 도움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어 답답했다. 경험해 보니 부드러운 색감을 지닌 표면이 매끄러운 마카롱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던 어느 날 아침, 막내는 여전히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며 소파 구석에 누워 아침 내내 움직이지 않았다. 점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던 아이가 내게 한마디 했다.


"엄마, 마카롱 만들기 이제 포기할까요?"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계속하는 것은 쉽지 않으니 나도 그러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힘들지... " 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이 짠했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으며 포기와 도전 사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던 막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연한 눈빛에 말없이 머리를 묶고 식당으로 걸어와 손을 씻더니 앞치마를 둘렀다. 다시 한번 도전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날 이후 다시 며칠. 인고의 과정을 겪은 후, 막내가 만든 마카롱에 드디어 삐에가... 처음으로 코크에 예쁜 프릴이 생겼다. 우리는 함께 소리를 지르며 집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자그마한 아이의 손으로 만든 마카롱. 울퉁불퉁한 모양이 파는 것만큼 예쁘지는 않지만, 아이가 만들어준 마카롱은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내게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마카롱이었다.


아이는 산을 넘었고, 그 결과 마카롱이 거기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난 막내가 마카롱을 만들겠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카롱이 계란 위에 놓여 있었다. 엄마가 자는 동안 홀로 마카롱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놓은 막내. 마카롱을 볼 때마다 말없이 소파에 누워 있다가 일어나던 결연한 막내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 막내야.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더라. 인생의 수많은 산. 그렇게 넘어가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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