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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y Mar 06. 2022

자라는 생명

일상 에세이

죽음이 코앞에 있는 것 같던 코로나 초기.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고 확진자가 늘어나 두려움이 커지던 그 시기. 놀이터에서 날마다 놀던 아이들은 집 안에만 머물렀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원도 끊었다. 잠잠히 뉴스만 접하며 숨죽이며 살았던 그때.


그 어둠과 절망의 시기에 나는 우리 집 작은 화분에 파를 심었다. 파뿌리를 잘라내고 화분에 있던 흙으로 뿌리를 덮고 물을 주었다. 들려오는 소식이 암울할수록 파에 정성을 쏟았다. 파의 흰 부분이 잘 보이도록 흙을 꼭꼭 눌러주고 물을 주었다. 정성을 쏟은 지 며칠 만에 잘린 흰 부분에서 작고 파릇한 푸른빛이 감도는 새싹이 솟아났다. 그 싹은 나에게 희망과 생명의 상징이었다.


코로나에 걸려 죽을 것만 같아 모든 것이 두려웠던 그 시절. 나는 잘린 파처럼 희망도 꿈도 잘린 듯했다. 그러나 파가 아직 살아 새싹이 나듯, 나도 아직 살아있었다. 세상이 두려워하던 죽음은 아직 나에게 오지 않았고 내게는 아직 생명이 있었다. 그 작은 푸른 새싹은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그것은 곧 내가 아직 세상 속에 할 일이 있다는 의미로 여겨졌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 아이가 토마토 씨 키트를 가져왔다.

작은 화분에 5개의 씨를 심었는데 3개의 싹이 났다. 이 새싹들은 화분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키가 자랐다. 어느 날, 남편은 이전에 파를 심었던 화분에 토마토 모종을 분갈이해주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에 토마토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선인장도 말라 죽이곤 하는 나에게 이건 기적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생명의 신비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초기. 모든 것이 두려웠던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오미크론이 기승을 부려 마음 편히 밖을 나가기 힘들다. 그래도 언젠가 이런 시기도 지나간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씩씩한 생명력을 가진 우리 집에 온 토마토들처럼 마음도 생각도 한층 더 자라나겠지. 이 밤에도 물을 듬뿍 먹은 토마토들은 자라나겠고 밥을 잔뜩 먹은 우리도 더 자랄 것이므로. 생명의 기운 가득한 봄. 꽃샘추위가 지나면 꽃이 피어나듯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도 지나가고 우리의 희망 가득한 시간이 시작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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