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다. 그러다 보니 주차장에 서서 보면 우리 집이 훤히 보인다. 부엌 쪽 창문을 통해 반대편에 있는 거실 유리창 밖의 하늘이 투명하게 비쳐 보일 정도다. 부엌에 설치된 블라인드는 암막용이라 낮에까지 내려놓으면 집 안으로 빛이 안 들어온다. 그래서 낮에는 주로 블라인드를 올려놓는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설거지하려고 부엌 싱크대 앞에 서면, 주차장에서 우리 집을 보고 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쳐 민망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집을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나무가 있었으니, 아파트 화단에 심긴 매화나무였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그 나무들은 야리야리한 나무였다. 두 그루의 매화나무는 해가 다르게 자라 갔고 날이 아직도 춥고 쌀쌀한 때에 꽃을 피우며 우리 집 창밖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봄이 되면서 꽃이 떨어지고 그 자리에 매실이 맺혔다. 매실이 얼마나 튼실히 열렸는지 보기만 해도 탐스러워 아파트 수목 소독 전에 그 매실을 따가시는 동네 분들도 계셨다.
시간이 갈수록 나무들은 잎이 무성해져서 여름 내내 우리 집 창문을 거의 다 가려줄 정도가 되었다. 자연 커튼이었다. 게다가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새가 나무에 둥지를 만들어 놓은 것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 나무가 더없이 사랑스러워졌었다. 몇 년 사이 새가 깃들일 만큼 성숙했구나 싶었다. 때론 새들이 가지 위에 한참을 앉아 자기들 소리 좀 들어보라고 지저귀었다.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릴 때면 여기가 숲인가 싶을 정도로 풍성해진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가늘게 비쳤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창문 밖에서 연한 초록잎으로 덮인 손을 나에게 흔들어 주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집 부엌 쪽 창 밖에 사람이 어른거리는 것이 보였다. 누구지 싶어 창문 가까이 다가갔더니 누군가가 매화나무 두 그루 중 더 풍성한 왼쪽 나무 가지를 쳐내고 있었다. 가지치기를 하나 싶어 일하시는 분들이 혹시 불편해하실까 봐 블라인드를 내려 두었다. 밖에서는 시끌시끌한 사람들 소리가 났다. 아파트 보수 공사로 요 며칠 시끄러웠기 때문에 오늘도 공사가 좀 있나 보다 했다.
오후가 되어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가 잠잠해졌고 가지치기가 다 끝났나 싶어 블라인드를 걷었다. 그런데 유리창 밖이 휑하니 빈 것이 내가 잠이 덜 깼나, 꿈꾸고 있나 했다. 아침에 누군가 가지치기를 하고 계시던 왼쪽에 있던 나무가 아예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침에 한 것이 단순 가지치기가 아닌, 아예 나무를 베어버린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잠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우리 집 바깥 풍경 중에 가장 아끼던 풍경이었는데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이런 상황 속에서의 아쉽고 답답하고 서운함을 누구에게 말하겠는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말을 잃었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이 더 서러웠다. 내가 심지도 않았고 가꾸지도 않은 그 나무에 대한 권리가 나에게 하나도 없었다. 차마 아무 말할 수 없을 때 눈에서 흐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눈물.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킬 수밖에. 마음이 진정이 되어 밖에 나가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파트 페인트칠을 다시 하는 중에 나무가 걸리적거려 베어버린 것이었다. 깔끔하게 색칠이 되어있는 아파트의 모습과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 한그루는 볼수록 이질적이었다. 색칠을 위해 잘 자라고 있는 나무를 벤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다른 한 그루의 매화나무는 여전히 집 앞에 있음에 감사하다. 내일부터는 홀로 남은 매화나무 한그루만이 외로이 우리 집을 바라보고 있는 이전과 다른 풍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조금도 돌보지 않았으나 나무를 여태 성심성의껏 돌봐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도 들고, 성실히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해준 잘린 나무에게도 고마웠다. 아파트 화단 미화용으로 무심히 심긴 나무 한 그루가 자라 가며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위로와 힘이 되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그루터기뿐인 나무는 오늘 밤 많이 춥겠다. 여름이라 그래도 다행이다. 그리고 그루터기만이라도 남겨 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그곳에서 다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기쁘다. 언젠가 내게 손 흔들어 주는 나뭇잎을 또 볼 날이 있겠지. 그때까지 나무가 건강하게 잘 살아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p.s. 저 위의 배경 사진은 올해 초 잎이 파릇파릇 나기 시작할 때였다. 오늘 우리 집 앞 무성한 나뭇잎 모습은 사진조차 없다. 저 사진이 마지막이다. 아쉽다.